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비,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빈은 각 지위에 해당하는 노부의장을 갖추었는데, 지위에 따라 의장의 구성이나 규모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의장은 기본적으로 여러 상징을 그린 깃발, 즉 의장기와 무기나 왕실의 생활용품에서 유래한 의장물로 구성되었다. 의장기는 어떤 상징이 그려지는가에 따라 각각 이름이 달랐고, 색깔도 청색·적색·백색·흑색·황색 등 오색으로 차이가 있었다. 색이나 문양의 차이 외에도 의장기는 크기에 따라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가장 큰 깃발은 대기(大旗), 중간 크기의 깃발은 중기(中旗), 작은 깃발은 소기(小旗)라 하였다.
[연원 및 변천]
보통 왕만 용기(龍旗)라는 대기를 사용하여 군주권을 상징하였지만, 세종대에는 상왕인 태종이 황룡대기(黃龍大旗) 2개를 만들어 의건부(義建府) 및 삼군부(三軍府)에 나누어 두도록 하되, 상왕전의 큰 기(旗)는 흰 바탕에 누런 선을 두르고 누런 용을 그려서 주상전의 큰 기와 다르게 하였다[『세종실록』 즉위년 8월 30일]. 『세종실록』「오례」 노부 항목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노부 항목에서 의장기의 명칭 가운데 ‘대기’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는 홍문대기(紅門大旗)와 후전대기(後殿大旗)가 있고 나머지 의장기는 크기에 대한 묘사는 없다.
큰 기[大旗]는 1인이 쥐고 2인이 이끌고 2인이 좌우에서 잡으며, 보통 기[中旗]는 1인이 쥐고 2인이 이끌며, 작은 기[小旗]는 1인이 쥐고 1인이 이끄는데, 모두 청의(靑衣)에 피모자(皮帽子)를 착용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 노부 대가의 노부]. 노부에 속한 깃발을 들 때 그 크기에 따라 기를 잡는 사람 외에 보조하는 사람의 수를 달리한 것이다. 대기는 5인, 중기는 3인, 소기는 2인을 각각의 깃발에 배치하였다.
개별 의장기가 대기·중기·소기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노부 항목에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조선후기 의궤 반차도에 묘사된 것을 통해 각 의장기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대기에는 교룡기(交龍旗)와 둑기(纛旗)만 해당하였다. 교룡기의 경우 말을 탄 한 사람이 융복(戎服)을 입고 기를 쥐고, 홍의(紅衣)에 피모자를 착용한 2인이 앞에서 이끌고 2인이 좌우에서 잡아 흔들리지 않게 했다. 둑기는 충찬위(忠贊衛)가 상복을 입고 말 위에서 기를 잡고 역시 4인이 잡아 흔들리지 않게 했다. 용기와 둑기는 노부의장이 아닌 형명(形名)에 속하였다. 중기는 홍문대기, 주작기(朱雀旗), 백호기(白虎旗), 청룡기(靑龍旗), 현무기(玄武旗), 황룡기(黃龍旗), 천하태평기(天下太平旗), 가구선인기(駕龜仙人旗), 벽봉기(碧鳳旗), 군왕천세기(君王千歲旗), 후전대기(後殿大旗) 등이었다. 왕비 의장 중 백택기(白澤旗), 세자 의장 중 백택기·기린기(麒麟期)·현학기(玄鶴旗)·가구선인기 등도 중기에 해당했다. 중기를 잡는 사람과 보조하는 사람 모두 청의에 피모자를 착용했다.
소기에는 육정기(六丁旗), 백택기, 삼각기(三角旗), 각단기(角端旗), 용마기(龍馬旗), 현학기, 백학기(白鶴旗), 영자기(令字旗), 고자기(鼓字旗), 금자기(金字旗) 등이 해당했다. 소기를 잡는 사람과 보조하는 사람 모두 청의에 피모자를 착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