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비,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빈은 각 지위에 해당하는 노부의장을 갖추었는데, 지위에 따라 의장의 구성이나 규모에 큰 차이가 있었다. 왕과 세자의 의장에는 탈것으로 가마 외에 여러 필의 말이 있었는데, 왕이 탈 경우를 위해 준비한 말인 어마(御馬)와 행렬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의장용 말인 장마(仗馬)로 구분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초기에는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말을 타고 가는 경우가 많았고, 노부의 제도가 갖추어진 이후에도 군사 훈련을 겸한 행차를 할 때에는 가마 대신에 말을 탔다. 이처럼 어마는 왕이 직접 타기 위한 말로서 노부 행렬에 배치한 반면, 장마는 온전히 장식용 말이다. 외방에 행차했을 때 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신료에게 장마를 내주어 타게 한 경우도 있지만, 장마는 3품의 작록을 받으면서 조정에 들어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쓸모없는 신하의 비유로 쓰일 정도로 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장식의 기능을 위주로 했다[『연산군일기』 3년 7월 24일]. 그러나 실제로 어마와 장마는 겉모양으로 구분되지 않았으며, 어마와 장마를 모두 어마로 칭하기도 하였다.
[형태]
대가노부(大駕鹵簿)에는 좌우로 벌여 선 의장 행렬의 가운데 부분에 장마 16필과 어마 2필을 좌우로 벌려 세웠다. 법가노부(法駕鹵簿)에는 장마 12필과 어마 2필, 소가노부(小駕鹵簿)에는 장마 6필과 어마 2필이 속하였다. 장마는 안장을 갖추었으며 말 한 필마다 각각 2인이 좌우에 서서 말을 끄는데 푸른색 옷에 종색(椶色) 초립과 운혜(雲鞋)를 착용하였다. 대가노부에서 장마는 여러 의장물 사이에 간격을 두고 2필씩 배치하였으며 장마 16필이 앞에 서고 소여(小輿)와 소연(小輦)이 그 뒤를 따랐으며, 어마 2필은 소연과 어연의 사이에 배치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 노부 대가의 노부]. 법가노부와 소가노부에서도 장마의 숫자는 줄어들지만 장마와 어마, 여연(輿輦)의 배치 순서는 같았다. 전정대장(殿庭大仗)을 벌여 세울 때에는 가마는 중도에, 어마는 중도의 왼쪽과 오른쪽에 서로 마주 보도록 세우고, 장마 16필은 각 8필씩 전정의 좌우에 서로 마주 보도록 세웠다.
대리청정을 하는 동궁의 대의장에는 6필, 소의장에는 4필의 말을 세웠는데, 명칭은 왕의 것과 차이를 두어 탄마(䩠馬)라고 하였다[『세종실록』 30년 6월 10일]. 세자의장에는 궐달마(闕闥馬) 2필이 있었고, 말을 끄는 사람의 복색은 장마의 경우와 같았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의장제도의 정비와 상징」, 『사총』77, 2012.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