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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조선시대에 국가 의례를 거행할 때 왕이 앉는 자리는 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의자 외에도 여러 요소로 구성하였다. 궁궐의 법전(法殿)에는 화려한 장식을 조각한 어탑(御榻)을 설치하였고, 그 위에 용평상(龍平床)을 올린 후 교의를 평상 위에 설치하여 왕이 앉을 수 있도록 하였다. 내전(內殿)에서의 공식 행사에서 왕비나 대왕대비가 앉는 자리도 어좌(御座)라고 하였다.
[연원 및 변천]
모든 국가 의례의 의주(儀注)에는 의례를 거행하기 전에 정해진 규칙에 의하여 의장과 의물을 배치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좌는 통상적으로 의식이 거행되기 하루 전에 액정서(掖庭署)에서 맡아 설치하였다. 이를 의주에서는 “기일 전 1일에 액정서에서 어좌를 근정전(勤政殿)의 북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보안(寶案)을 어좌 앞 동쪽 가까이 설치하고, 향안(香案) 2개를 근정전 밖의 왼쪽과 오른쪽에 설치한다.”고 기록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의식 납비의 책비]. 왕이 의식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권정례(權停例)로 의식을 거행하더라도 어좌는 설치하였다[『중종실록』 20년 2월 28일]. 어좌는 기본적으로 붉은색이지만, 왕이 상복을 입을 때에는 가마나 의장과 마찬가지로 마포로 감쌌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기록화에서는 왕을 직접 그리지 않으므로 왕이 있는 곳은 모두 어좌만 그려 왕의 존재를 표현하였다.
[형태]
어좌는 왕이나 왕비가 앉는 자리를 의미하는데, 어좌를 설치한다고 하면 우선 용평상을 설치하고 그 위에 용교의(龍交椅)를 올리며, 교의 앞에는 발을 올려 둘 수 있는 답장(踏掌)을 둔다. 어좌의 양 옆에는 청선(靑扇)을 든 근시가 서며, 어좌의 뒤에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을 설치한다. 어좌의 앞쪽에는 향꽂이를 올린 작은 탁자인 향좌아(香座兒) 2개를 좌우에 설치하였다. 어좌가 놓인 어탑 위에는 청선차비(靑扇差備)를 포함한 근시 4명과 보검차비(寶劍差備) 2명만 올라와 설 수 있었다.
왕실 잔치나 하례 등 내전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왕이나 대왕대비나 중전이 앉는 자리는 어탑 없이 평상과 교의, 답장만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십장생도 병풍 등을 설치하였다. 나머지 청선이나 향좌아는 외전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와 같은 위치에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