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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이 전정(殿庭)이나 궁궐 밖에서의 의식을 위해 거둥했을 때 사용하는, 군막을 쳐서 만드는 임시 처소.
[개설]
악차(幄次)는 궁궐 밖에 천막을 쳐서 만든 임시 처소이다. 행사가 거행되는 전각 내에 설치하여 왕이 행사에 대비하여 옷을 갈아입는 등 준비하는 곳을 대차(大次)라고 하였고, 행사 장소에 들어오기 전에 문 밖에 설치한 대기 장소는 소차(小次)라고 하였다. 회례연이나 진찬 등 연향의식에서 행사 장소 옆에 쉴 수 있는 장소로 마련한 곳은 편차(便次)라고 하였으며, 행차 도중에 쉬어가는 곳에 설치한 악차는 주정악차(晝停幄次)라고 하였다. 천막을 쳐서 만드는 가설 전각은 장전(帳殿)이라고 불러 구분하였다.
[연원 및 변천]
악차라는 용어는 태조의 즉위식 장면에서부터 등장한다. 태조가 태묘의 악차에 나아가 다음날 즉위를 고하는 강신제(降神祭)를 지내고, 다시 악차에서 나와 백관의 하례를 받았다[『태조실록』 7년 9월 12일]. 이렇게 악차는 종묘(宗廟)나 사직(社稷), 궁궐 정전(正殿)에서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정전의 바깥에 휘장을 이용해 임시로 가설한 처소를 지칭한다. 왕이 특정 장소에 행차하는 도중 잠깐 쉬어갈 때에도 악차를 설치하였다[『태종실록』 1년 윤3월 27일]. 국상 발인 의식에서 영여(靈輿)를 멈추고 잠시 쉴 때에도, 영여를 안치할 때에도 악차를 설치하였다[『태종실록』 1년 9월 7일]. 재궁(梓宮)이 산릉에 도착한 후 현궁(玄宮)에 내리기 전에 임시로 안치하는 악차는 영악전(靈幄殿)이라고도 불렀다[『성종실록』 1년 2월 3일]. 이상에서 보듯이 악차는 왕실의 의식을 거행할 때에 임시로 가설하는 천막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이며 악차를 이용하는 인물의 지위와 쓰임에 따라 대차와 소차, 편차, 주정악차 등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왕실의 왕이나 왕비의 신주에 제주(祭酒)할 때에도 혼전 근처에 악차를 설치하였다[『세종실록』 3년 5월 8일].
[형태]
##00016695_그림1_『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에 수록된 왕세자 악차의 모습
위의 그림은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에 수록된 왕세자 악차의 모습이다. 악차의 위쪽에 큰 차일(遮日)을 치고 그 아래에 악차를 설치하였다. 악차는 작은 천막으로 만든 방처럼 보이는데 가마와 같이 사방의 벽체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하였고, 궁륭형의 지붕을 설치하였다. 악차 안에는 방석을 깔고 안식(安息)을 두어 세자가 앉을 수 있도록 했고, 좌석의 앞에는 서안(書案)과 연갑(硯匣)을 두고 뒤쪽에는 병풍을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