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후(侯)는 활을 쏠 때 과녁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보통 천으로 된 과녁을 말한다. 활로 쏴서 뚫리지 않도록 촉이 없는 화살을 사용하고 천도 서너 겹을 덧대어 사용하였다. 화살이 박히는 과녁은 표적(標的)이라고 부른다. 휴대하기 간편하여 군사 훈련에서 많이 이용하였다. 또한 왕이 배석한 자리인 무과 시험이나 대사례에서도 화살촉을 제거한 화살을 사용해야 했기에 천으로 된 후를 과녁으로 삼았다.
[연원 및 변천]
후는 촉이 없는 화살을 사용할 때 표적으로 삼는 천으로 된 과녁을 말한다. 무과 시험과 군사들의 훈련에서 주로 사용하였으며, 좌우에 기둥을 세우고 사각형 천의 각 귀퉁이를 팽팽하게 매달아 사용하였다. 무과 시험에서는 색깔을 달리하거나 중심부에 돼지 머리[豕頭]가 그려진 가죽을 덧대 표적으로 삼았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의식 무과 전시의].
후에는 신분에 따라 동물 그림을 각각 다르게 사용하였는데, 황제는 호후(虎侯)라 하여 호랑이 머리 그림을 사용하였고, 왕은 웅후(熊侯)라 하여 곰의 머리, 종친 이하 문무관(文武官)은 미후(麋侯)라 하여 사슴의 머리, 일반적인 군사 훈련에서는 시후(豕侯)라 하여 돼지 머리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