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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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연(恩榮宴)

서지사항
항목명은영연(恩榮宴)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과거(科擧)
동의어경림연(瓊林宴)
관련어급제(及第), 방방(放榜), 부연관(赴宴官), 선온(宣醞), 압연관(押宴官), 전문(箋文)
분야정치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문무과 급제자를 위하여 왕이 베풀어 주던 축하 연회.

[개설]
고려 때부터 학업을 장려한다는 취지에서 시행하였다. 조선시대 들어 1402년(태종 2) 무과(武科)를 시행한 후부터는 무과 급제자에게도 은영연을 함께 하사하였다.

[내용 및 특징]
과거시험의 합격증서를 나누어 주는 공식 의례인 방방(放榜)이 끝난 후 왕이 새로 급제한 사람들을 위한 은영연을 베풀도록 명을 내렸다. 처음에는 문과와 무과의 은영연을 따로 시행하다가 1416년(태종 16)부터 함께 시행하였다[『태종실록』 16년 9월 6일].

당초 의정부에서 주관하여 거행하였으나 1414년(태종 14)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폐지하면서 시행 주체가 예조로 바뀌었다[『세종실록』 2년 3월 30일]. 그러나 뒤에는 다시 의정부에서 은영연을 개최하였다[『세종실록』 16년 3월 21일]. 압연관(押宴官)과 부연관(赴宴官)이 연회를 주관하였으며, 왕은 승지를 보내 선온(宣醞)을 하사하였다. 은영연이 끝나면 문무과 급제자는 왕에게 은영연의 하사에 감사하는 전문(箋文)을 올렸다[『세종실록』 11년 4월 20일].

신급제를 위하여 왕이 연회를 베푸는 일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는데, 중국 송나라 때에는 천자가 경림원(瓊林苑)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이 때문에 은영연을 경림연(瓊林宴)이라고 하였다. 은영연은 본래 과거가 있을 때마다 시행하였으나 성종대 이후에는 점점 뜸해져서 1580년(선조 13)에는 여유길(呂裕吉) 등에게 은영연을 하사한 것을 오히려 특별한 일로 기록하였다. 이후 공식적으로 은영연을 시행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은영연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악학궤범(樂學軌範)』
■ 『계곡집(谿谷集)』
■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
■ 宮崎市定, 「宣祖時代の科擧恩榮宴について」, 『朝鮮學報』 29, 1963.

■ [집필자] 박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