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녹명(錄名)

서지사항
항목명녹명(錄名)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과거(科擧)
관련어녹명관(錄名官), 녹명소(錄名所), 보거단자(保擧單子), 보단자(保單子), 사조단자(四祖單子), 입문소(入門所)
분야정치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과거 시험 응시자의 자격을 심사하고 등록하는 일.

[개설]
과거 시험에 앞서 응시자의 신원, 답안을 작성할 시험용지[試紙]의 적격 여부, 예비시험 통과 여부 등을 심사하여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절차였다. 녹명을 하지 않으면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내용 및 특징]
녹명은 조선초기부터 시행하였으며, 응시 자격을 심사하여 무자격자의 응시를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과거 시험의 응시자는 시험장에 설치된 녹명소(錄名所) 또는 입문소(入門所)에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는 녹명단자(錄名單子)와 신원 보증인의 증명서인 보단자(保單子), 답안을 작성할 시지 등을 함께 제출하였다. 무과의 경우 녹명단자에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외모의 특징도 기록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보단자는 폐지된 것으로 보이나 무과와 잡과 응시자는 여전히 보증인이 작성한 보거단자(保擧單子)를 제출하였다. 녹명관은 제출된 서류를 심사하고 하자가 없는 경우 응시자의 명단을 녹명책(錄名冊)에 기입하였다.

녹명은 과거 시행에 앞서 기한을 공지하고 시험 전에 마감하였다[『인조실록』 1년 윤10월 26일]. 녹명을 담당하는 관원은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는데, 서울에서 시행하는 시험은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경우 사관(四館): 성균관, 예문관, 승문원, 교서관)이, 무과의 경우 훈련원(訓鍊院)이 주로 담당하였고, 지방에서 시행하는 향시는 관찰사나 병마절도사가 임명한 차사원(差使員)이 담당하였다. 잡과는 해당 관서에서 담당하였다.

시험과 관련된 규제가 강화될수록 녹명 과정에서 심사하는 내용도 증가하였다.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경우 시지의 규격과 지질도 함께 검사하여 지나치게 지질이 고급스럽거나 규격이 큰 경우는 응시를 불허하였다. 또 호적(戶籍)에 입적한 자에게만 과거 응시를 허락한다는 법이 제정된 후에는 입적 여부도 조사하였다.

두 곳(2곳) 이상에 시험장을 설치하는 경우 각 시소의 응시자 수가 고르게 안배될 수 있도록 응시할 시험장도 배정해 주었다[『숙종실록』 36년 8월 16일]. 회시의 경우에는 초시의 합격 지역에 따라 시험장을 배정하되, 상피(相避) 등 부득이 한 사유가 있는 경우는 다른 시험장에서 응시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녹명 과정에서 작성한 녹명책은 시험 당일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는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다[『중종실록』 34년 8월 28일]. 또 응시자가 제출한 녹명단자는 시험 후 합격자 명단인 방목(榜目)을 작성할 때 신원을 확인하는 근거 자료가 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통문관지(通文館志)』
■ 『태학성전(太學成典)』
■ 나영일, 『『무과총요』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 집문당, 2000.
■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
■ 차미희, 『조선시대 문과제도연구』, 국학자료원, 1999.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7.

■ [집필자] 박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