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후기 과거에서 남의 답안을 대신 작성해 주는 대술(代述) 행위를 하던 자들을 가리키던 속어였다. 대술은 과거 시험장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부정행위의 하나로 처벌 대상이 되었다.
[내용 및 특징]
거벽은 본래 특정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거나 최고로 인정받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특히 문장이 뛰어난 사람을 문장거벽(文章巨擘)이라고 하였는데, 과문(科文)에 뛰어난 자를 거벽이라고 칭한 사례도 있었다.
조선후기에 다른 사람을 시켜 과거 답안을 대신 작성하게 하는 대술이 성행하면서 서울의 경화자제들이 글을 잘하는 지방의 선비들을 데려다가 자신의 답안을 대신 작성하게 하며 거벽 또는 유모(乳母)라는 속어로 불렀다[『정조실록』 4년 5월 11일]. 거벽은 벌열가에 문객(門客)으로 기숙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값을 받고 전문적으로 답안을 대신 작성해 주는 자들도 있었다. 『정조실록』에는 서울의 고봉환(高鳳煥), 송도의 이환룡(李煥龍), 호남의 이행휘(李行輝), 호서의 노긍(盧兢) 등이 널리 알려진 거벽으로 처벌받은 기록이 있었다[『정조실록』 1년 1월 29일].
대술은 불법행위로 『경국대전』에는 남에게 답안을 대신 작성하게 한 차술자와 남의 답안을 대신 작성한 대술자는 모두 장(杖) 100대, 도(徒) 3년에 처하고, 이후 2회의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하도록 하였다. 숙종대에는 처벌을 강화하여 대술을 한 경우 조정의 관원과 생원·진사는 변방에 충군하고 사면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벼슬이 없는 유학(幼學) 이하는 본인에 한하여 수군(水軍)에 충군하도록 하였다. 이 내용은 『수교집록(受敎輯錄)』을 거쳐 『속대전』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