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록소(正錄所)

서지사항
항목명정록소(正錄所)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과거(科擧)
동의어성균정록소(成均正錄所)
관련어녹명(錄名), 성균관(成均館), 시정기(時政記), 정록청(正錄廳)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초기 과거 시험의 녹명을 담당한 성균관의 부서.

[개설]
조선초 성균관에 설치된 기구로 과거 응시 자격을 심사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균정록소(成均正錄所)라고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업무]
정록소를 처음 설치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았다. 1392년(태조 1) 7월 28일에 반포된 태조의 즉위 교서에 정록소에서 성균관 유생 중 경학에 밝고 행의가 뛰어난 자를 뽑아 성균관 장이소(長貳所)에 추천한다는 내용이 있었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이로 미루어 보면 고려시대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태학지』에 따르면 정록이라는 말은 성균관 참하관(參下官)들이 입직하며 시정기(時政記)를 작성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과거 시험에 앞서 응시자들의 자격을 심사하고 응시를 허가하는 녹명(錄名)을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태조실록』 5년 5월 6일]. 그러나 1444년(세종 26) 성균관·예문관·교서관 삼관(三館)이 공동으로 녹명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폐지된 듯 더 이상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정록소의 건물인 정록청(正錄廳)은 그대로 남아 성균관 낭관들의 집무소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태학지(太學志)』

■ [집필자] 박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