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오빈역(娛賓驛)

서지사항
항목명오빈역(娛賓驛)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평구도(平丘道)
관련어경기좌도수참전운판관(京畿左道水站轉運判官), 양근군(楊根郡), 역도(驛道), 역로(驛路), 정역찰방(程驛察訪)
분야경제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양근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오빈역(娛賓驛)은 양근군(楊根郡) 남쪽 10리(약 4㎞) 지점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양근에 위치했으며, 평구도(平丘道) 소속의 역(驛)으로 편성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평구도 소속의 역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오빈역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평구도 소속의 역으로 편성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1457년(세조 3)에는 평구역 등과 함께 경기좌도수참전운판관(京畿左道水站轉運判官) 겸 정역찰방(程驛察訪)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세조실록』 3년 9월 12일],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정비가 시행되는 1462년(세조 8)경 평구도가 복구되면서 다시 평구도 소속의 역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평구도 소속 역으로 실려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오빈역에는 역마(驛馬) 13마리, 역리(驛吏) 55명, 역노(驛奴) 22명, 역비(驛婢) 4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빈역은 한양에서 한강과 남한강 북변을 따라 원주나 홍천·인제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서쪽의 한양 방면으로는 봉안역(奉安驛), 동쪽의 원주·홍천 방면으로는 전곡역(田谷驛), 남쪽의 여주 방면으로는 양화역(楊花驛)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오빈역도 폐지되었다.

오빈역의 위치는 현재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집필자] 정요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