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감원역(坎原驛)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음성 서쪽 1리(약 0.4㎞)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연원도(連原道)의 소속 역(驛)으로 편제되었다.
[내용 및 변천]
조선시대 감원역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연원도의 소속 역으로 기록되었다.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에도 연원도의 소속 역으로 편성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연원도 소속으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따라서 감원역은 조선초기부터는 연원도 소속으로 편제되어 조선후기까지 별다른 변동 없이 연원도의 소속 역으로 존재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감원역에는 상등마(上等馬) 1마리, 중등마(中等馬) 5마리, 복마(卜馬) 1마리, 역노(驛奴) 17명, 역비(驛婢) 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감원역은 북서쪽으로는 죽산·음죽 방면, 동쪽으로는 충주·괴산 방면, 남쪽으로는 청안·청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감원역에서는 북서쪽으로 음죽 무극역(無極驛), 북동쪽으로 충주 용안역(用安驛), 남동쪽으로 괴산 인산역(仁山驛), 남쪽으로 청안 시화역(時化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감원역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