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입과 머리가 커서 대구(大口) 혹은 대두어(大頭魚)로 불린다. 대구어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으로 겨울철이 제철이다. 생선살은 맛이 담백하여 국, 구이, 생선회를 만들어 먹기에 좋다. 내장과 알을 이용하여 젓갈을 담기도 하고, 내장을 이용하여 순대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껍질 또한 버리지 않고 누르미를 만들어 먹었다.
[원산지 및 유통]
한반도 연해에서 대구어는 주로 동해안과 서해안에 서식한다. 서해대구는 크기가 작은 왜대구인 반면, 동해대구는 큰 대구여서 특별히 왕에게 진상하였다.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초기에는 경상도·강원도·함경도 지역에서 대구어가 많이 생산되었다. 성종대 이후부터는 강원도 지역에서 대구어가 잘 잡히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스스로 대구어를 준비할 수 없는 강원도 백성들이 다른 지역에서 대구어를 구매하여 진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세종실록』 19년 5월 1일][『성종실록』 23년 1월 17일][『중종실록』 11년 5월 21일].
대구어는 공물로 바칠 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으므로 주로 말린 형태인 건대구로 유통하였다. 근대 조리서인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는 대구어를 손질해서 말리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건대구는 생대구의 비늘을 깨끗하게 긁어내고 내장을 빼낸 후, 둘로 쪼개서 벌려 놓고 그 위에 소금을 약간 뿌려서 말리는 방식으로 가공하였다. 이외에 반건조 상태인 반건대구로도 유통하였다.
[연원 및 용도]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로 대구어를 꼽았다. 중국 황제에게 사신을 보낼 때마다, 그리고 중국에서 온 사신을 영접할 때마다 선물 목록에는 대구어의 이름이 올랐다. 때로는 중국 황제가 직접적으로 대구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성종실록』 9년 12월 21일].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쓰인 조리서를 참고해 볼 때 대구어를 재료로 한 음식들은 구이, 조림, 국(탕), 회, 포, 누르미, 순대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건대구는 주로 연회나 제사를 지낼 때 높게 괴는 절육(切肉)에 사용하였고, 생대구로는 탕이나 전을 만들어 먹었다. 대구어는 생선살은 물론 알, 내장, 아가미, 심지어는 껍질까지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음식에 활용되었다.
17세기에 쓰인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대구 껍질을 이용하여 만든 음식인 대구껍질누르미와 대구껍질채가 기록되어 있다. 『소문사설(謏聞事說)』에는 어장증(魚腸蒸)이라 하여 대구 창자에 대구살을 소로 넣고 쪄 낸 대구순대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조리법을 자세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누르미는 굽거나 찐 재료에 걸쭉하게 졸인 즙을 위에 뿌린 음식을 말한다. 대구껍질누르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대구 껍질을 물에 담가 깨끗이 씻어 비늘을 제거한 후 약과만 한 크기로 썰어 놓는다. 고기와 버섯을 잘게 다져 양념한 후 대구 껍질로 싸서 끓는 물에 넣고 삶는다. 여기에 고기국물과 밀가루, 파 등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즙을 끼얹어 낸다. 대구껍질채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늘을 제거한 대구 껍질을 물에 한 번 삶아서 가늘게 채 썬다. 석이버섯과 파도 가늘게 채 썬다. 이렇게 준비한 재료에 간장과 식초를 넣어 무쳐 낸다. 대구순대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대구의 창자에 대구살을 소로 넣고 양쪽 끝을 졸라맨 다음 푹 찐다. 그런 다음, 칼로 편을 썰어 초장을 찍어 먹는다. 만약 대구살이 넉넉하지 않을 때에는 꿩, 돼지, 닭고기를 이용하여 소를 만들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