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이러한 규정을 그대로 지키는 일은 여의치 않았다. 숙종대에 이르러서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규정한 능인을 제향 시 다른 과실로 대용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숙종실록』 43년 6월 21일]. 능인을 대신한 과실은 1793년(정조 17)에 지어진 『어정태상과과해저도식(御定太常菓果醢葅圖式)』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조대부터 오색피과(五色皮果)인 황률[黃栗]·대추[大棗]·개암[榛子]·능인·검인[茨仁] 대신 생률[生栗]·비자(榧子)·연밥[蓮子]·연율(軟栗)·호두[胡桃]·잣[栢子]으로 바꿔 차렸다고 한다. 1~12월에 매달 행해지는 각종 대제(大祭)에서 능인은 검인과 함께 연밥으로 대체되었다.
능인은 『해동농서(海東農書)』에 설명된 것과 같이 주로 껍질을 벗긴 알맹이를 가루로 내어 꿀에 섞어 먹거나, 『농정회요(農政會要)』에서 보듯이 밥·죽·떡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양식을 대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