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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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밀(蜂蜜)

서지사항
항목명봉밀(蜂蜜)
용어구분전문주석
관련어납밀(蠟蜜), 백밀(白蜜), 백청밀(白淸密), 석청(石淸), 청밀(淸蜜), 황밀(黃蜜)
분야생활 풍속
유형식재료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꿀벌이 꽃의 꿀샘에서 채집하여 저장해 둔 달콤하고 끈끈한 액체.

[개설]
설탕이 나지 않는 조선에서는 꿀[蜂蜜]이 식품이자 약으로 쓰였는데, 꿀 중에서도 석청(石淸)과 백청(白淸)을 더욱 귀하게 여겼다. 꿀은 외국이나 외국의 사신에게 보내는 선물, 왕실의 각전(各殿)에 진상하거나 상례(喪禮)나 수연(壽宴) 때 왕실에서 하사하는 물품으로 애용되었다.

[원산지 및 유통]
조선시대에 꿀은 자연 혹은 양봉을 통해 전국적으로 생산되어 진상되는 식품이었다. 태종 때는 산이 있는 고을에 양봉통(養蜂筒)을 설치하고 양봉을 하게 하여, 청밀(淸蜜)과 황랍(黃蠟)의 납공을 분담시키려 시도한 적이 있다[『태종실록』 18년 3월 24일]. 봉진하는 청밀은 『승정원일기』 1648년(인조 26) 2월 7일 기사에 의하면, 항아리에 담아 바쳤기 때문에 운반하는 도중에 깨지기도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꿀은 경기도 광주목의 지평현, 철원도호부의 삭녕군·안협현·연천현, 충청도 청주목의 옥천군·문의현·청안현·영동현·황간현·회인현·보은현·청산현·진천현, 충주목의 단양군·청풍군·괴산군·음성현·연풍현·제천현·영춘현, 공주목, 경상도 경주부의 밀양도호부·양산군·울산군·창녕현·언양현·장기현·영산현·현풍현·청하현, 안동대도호부의 영해도호부·순흥도호부·영천군·청송군·의성현·영덕현·예안현·기천현·봉화현·희흥현·신녕현·진보현, 상주목의 성주목·선산도호부·합천군·초계군·김산군·고령현·함창현·용궁현·문경현·지례현, 진주목의 김해도호부·창원도호부·함안군·함양군·곤남군·고성현·사천현·거창현·하동현·진성현·칠원현·산음현·안음현·삼가현·의령현·진해현, 전라도 전주부의 진산군·금산군·정읍현·태인현·고산현, 나주목의 해진군·영암군·고창현·흥덕현·장성현, 남원도호부의 순창군·용담현·구례현·임실현·운봉현·장수현·무주현·진안현·곡성현·광양현, 장흥도호부의 담양도호부·순천도호부·무진군·보성군·안악군·고흥현·능성현·창평현·화순현·동복현·옥과현, 황해도 황주목의 서흥도호부·안악군·수안군·곡산군·신은현, 해주목의 장연현, 연안도호부의 우봉현·토산현, 강원도 강릉대도호부의 양양도호부·정선군·평창군, 원주목의 영월군·횡성현·홍천현, 회양도호부의 금성현·김화현·평강현·이천현, 삼척도호부의 평해군·울진현, 춘천도호부의 낭천현·양구현·인제현, 간성군의 고성군·통천군·흡곡현, 평안도 평양부의 삼등현·강동현, 안주목의 성천도호부·자산군·순천군·개천군·덕천군·맹산현·은산현·양덕현, 의주목의 정주목·정녕현, 삭주도호부의 영변대도호부·벽동군·운산군·박천군·태천군, 강계도호부의 이산군·희천군·여연군·자성군·위원군의 토공(土貢)이었다. 또한 경기의 광주목, 양근군, 양주도호부, 포천현, 평안도의 삭주도호부 창성군, 함길도 온성도호부의 토산(土産)이다.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에 꿀은 공물과 봉진품, 하사품 등의 주된 품목이었다. 꿀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사신에게 선물하거나, 중국이나 일본에 보내는 사신이 가져가는 선물로 쓰였다. 예를 들면, 세종 때 일본에 회례사(回禮使)를 보내면서 잣·인삼과 함께 청밀 20두(斗)를 보냈고[『세종실록』 6년 2월 7일], 세조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에게 육포(肉脯)·건어(乾魚)·해채(海菜)·잣[栢子]·호두[胡桃]·녹미(鹿尾)·어자(魚鮓)·건치(乾雉)·장포(獐脯)·건연어(乾年魚)·건대하(乾大蝦)·청밀·건대구어(乾大口魚)·복어해(蝮魚醢)·연어해(年魚醢)·은구어해(銀口魚醢) 등과 함께 청밀을 선물한 일이 있다[『세조실록』 5년 4월 10일][『세조실록』 5년 4월 14일][『세조실록』 6년 3월 9일].

꿀은 1673년(현종 14) 청(淸)으로부터 영구히 진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감면받기까지[『현종실록』 14년 9월 17일] 생배[生梨]·잣·은행과 함께 해마다 심양(瀋陽)에 제수로 보내는 물품이었다[『인조실록』 26년 9월 3일].

또한 꿀은 왕이 신하 등의 상사(喪事)에 보내는 부의(賻儀) 중 주요 물품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이와 관련한 기록은 성종대에 많이 보인다. 부의품의 종류와 양은 차등이 있지만 대개 쌀·콩·종이·베·모시·석회·꿀·황랍·소맥(小麥)·기름·진말(眞末)·초[燭]·공석(空碩)·초둔(草芚)·유둔(油芚)·각종 과일 등이었고, 이 가운데 꿀은 빠지지 않는 물품이었다[『성종실록』 2년 11월 3일][『성종실록』 6년 6월 21일][『성종실록』 8년 12월 4일][『성종실록』 9년 11월 26일][『성종실록』 10년 10월 23일]. 꿀은 혼례나 생일잔치와 같은 경사(慶事)에도 하사되었다[『성종실록』 7년 6월 13일][『고종실록』 42년 8월 11일].

이와 같이 꿀이 선물이나 하사품으로 애용된 것은, 꿀은 그 자체로도 식용할 수 있지만, 특히 명절이나 잔치에서 소용되는 각종 정과(正菓)·유밀과(油蜜菓)·약과(藥果)·다식(茶食) 등을 만들 때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종 과실을 꿀에 졸여야 하고, 유밀과와 약과를 만들 때도 밀가루를 꿀·기름·소주로 반죽하며 꿀에 담가 조리해야 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집필자] 김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