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정월에 멥쌀로 만들어 둔 누룩을 이용하여 배꽃이 필 때부터 빚기 때문에 배꽃의 한자인 이화(梨花)를 붙인 술이다. ‘이화국(梨花麴)’이라고도 부른다. 누룩은 멥쌀로 계란 크기로 만든다.
[만드는 법]
이화주 만드는 법을 기록한 문헌은 조선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나온다. 세조 때의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 김유(金綏)가 지은 『수운잡방(需雲雜方)』, 장계향(張桂香)이 지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홍만선(洪萬選)이 편찬한 『산림경제(山林經濟)』, 유중림(柳重臨)이 편찬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서호수(徐浩修)가 편찬한 『해동농서(海東農書)』, 1800년의 책력에 쓴 『역주방문(曆酒方文)』, 서유구(徐有榘)가 편찬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송영노(宋永老)의 부인 연안이씨가 한글로 쓴 『우음제방(禹飮諸方)』, 18세기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군학회등(群學會騰)』, 그리고 저자와 연대를 확인할 수 없는 『주방문(酒方文)』 등에 이화주 만드는 법이 나온다.
이화주의 중요한 과정은 누룩을 만드는 법이다. 『산가요록』에서는 누룩을 2월 상순쯤에 멥쌀 다섯 말을 물에 담갔다가 이튿날 곱게 가루를 내어 깁체에 쳐서 물을 적당히 부어 뭉쳐지게 만들어 오리알 모양의 크기로 빚는다고 했다. 이것을 쑥으로 싸서 빈 섬에 담아 온돌방에서 7일 동안 익히고 다시 뒤집어서 7일 동안 또 7일 동안 익힌다. 거친 껍질을 벗기고 한 덩어리를 서너 조각으로 깨서 마른 상자에 담고 보자기로 덮은 다음 햇볕에 말린다. 배꽃이 필 무렵에 꺼내서 가루로 빻아 깁체에 곱게 치고 다시 고운 흰 모시보자기에 친다. 멥쌀 열 말을 가루 내어 깁체에 구멍떡을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는다. 이것을 조금씩 떼서 술독 바닥에 넣는다. 쌀 한 말과 누룩가루 다섯 되를 섞어 손바닥 크기의 떡을 만들어 술독에 넣고 빚는다. 5월 15일쯤이면 그 맛이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했다.
『수운잡방』에서는 ‘이화주조국법(梨花酒造麴法)’을 별도로 적어 두었는데, 배꽃이 필 때 누룩을 만든다고 했다. 『음식디미방』에서도 ‘이화주 누룩법’을 별도로 적어 두었다. “백미 서 말을 백세[깨끗이]하여 물에 하룻밤 재워 다시 씻어 세말[곱게 가루] 내어 주먹만큼 만들어 짚으로 싸고 공석[돗자리]으로 담아 더운 구들에 두고 자주 뒤쳐서 누렇게 뜨면 좋으니라. 쓸 때 껍질 벗기고 작말[가루]하라. 처음 만들 때 물을 많이 하면 썩어 좋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이화주 만드는 법을 ‘이화주법 한 말 빚기’라고 적었다. “백미 한 말을 백세 세말하여 구멍떡을 만들라. 익게 삶아 차거든 잘게 뜯고 누룩가루 서 되를 온전히 섞어 두 손으로 많이 쳐서 넣어 두어 삼사일 후에 쓰나니라. 익으면 걸쭉한 죽 같고 빛이 희니 물 타 먹으라.”고 했다.
『산림경제』의 「치선(治膳)」 ‘양주(釀酒)’에서는 중국 당나라 때의 문헌으로 알려진 『사시찬요(四時纂要)』를 인용하여 이화주 만드는 법을 적었다. “정월 첫 해일(亥日) 3일 깨끗이 씻어 물에 불린 쌀을 건져 내어 빻아 고운체로 쳐서 물을 넣지 말고 주물러 계란 크기의 덩이를 만든다. 이 덩이를 독 안에 넣고 솔잎을 켜켜이 놓아, 방 윗목 따뜻하지 않은 곳에 놓아두었다가, 7일 만에 꺼내어 돗자리나 베보자기 위에 펴서 반나절 볕에 말려 다시 솔잎에 묻는다. 다시 이렇게 한 차례 한 뒤 꺼내어 볕에 바싹 말려 종이 봉지에 담아 갈무리해 둔다. 배꽃이 핀 뒤부터 여름 동안 언제라도 빚을 수 있다. 깨끗이 씻은 쌀을 가루로 빻아 구멍떡을 만들어 쪄서 식은 뒤에 이미 만들어 둔 누룩가루를 고루 섞어 독에 넣고 며칠에 한 번씩 손으로 뒤섞는다. 봄에는 7일, 여름에는 21일이면 쓸 수 있다. 뜨거울 때는 독을 물속에 담가 놓는다. 술을 진하고 달게 빚으려면 쌀 한 말에 누룩가루 일곱 되를 넣고, 맑고 톡 쏘게 빚으려면 서너 되를 넣고 떡을 삶아 낸 물을 식혀 섞어서 빚는다. 혹 멥쌀을 쪄서 보통대로 빚거나 혹은 찹쌀로 빚어도 된다.” 이 만드는 법은 『증보산림경제』, 『임원경제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도 그대로 옮겨졌다.
[연원 및 용도]
중국 당나라 때의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항주춘망(杭州春望)」이란 시에 “항주의 민간 술 중에 배꽃이 필 때에 익는 술을 이화춘(梨花春)이라 부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당나라 이후 항주에서 배꽃이 필 때 빚는 술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많다. 백거이의 시는 고려시대 이래 유학자들이 즐겨 읽었기 때문에 이화주의 명칭이 널리 알려졌다.
조선에서는 세종 때 명나라의 사신(使臣) 창성(昌盛)이 요청한 물목 중에 이화주 15담(壜)이 들어 있었다[『세종실록』 11년 5월 3일]. 예종 때에는 왕이 명나라 사신 정동(鄭同)과 심회(沈繪)에게 이화주 두 그릇을 나누어 주었다[『예종실록』 1년 4월 8일]. 예종은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익대공신(翊戴功臣)에게도 이화주 1담을 내려주었다[『예종실록』 1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