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현안은 성벽의 안쪽 바닥에 바깥쪽을 향한 구멍인 안구(眼口)를 두고 외벽면을 수직으로 뚫어 성벽에 접근해 기어오르는 적을 물리칠 수 있게 한 구조물이다. 즉 성벽 안쪽에서 현안을 통해 뜨거운 물이나 기름 등을 부어 적이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또한 적을 관찰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형태]
현안은 성 안쪽에서 성벽 외부로 수직으로 뚫려 있었다. 또한 안에서 현안을 통해 하는 공격이 적에게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도록 비스듬한 경사도를 두고 설치되었다. 특히 성벽에서 돌출된 치성(雉城)의 경우 면이 넓고 또 적의 침략 시 공격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치성 부분에 현안이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변천 및 현황]
현안은 주로 산성보다 평지성에 많이 활용되었다. 따라서 조선보다는 평지성이 많은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설치되었다. 산성이 주를 이룬 조선에서는 현안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柳成龍)은 이 점을 지적하며 중국의 예에 따라 성을 쌓을 때 현안을 많이 설치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8년 10월 22일]. 이듬해 비변사에서는 중국의 『기효신서』 등에 나타난 성곽 제도 등을 설명하며 조선 성곽 제도의 보완책을 제시하는데, 그 일환으로 여장(女墻), 즉 성가퀴와 여장 사이 즉 타(垜)마다 현안을 설치하자고 아뢰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9년 11월 24일].
현안이 가장 효과적으로 설치된 곳은 바로 수원의 화성(華城)이다. 화성의 돈대(墩臺)나 적대(敵臺)에는 모두 현안이 설치되어 적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특히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3층의 독특한 구조인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은 깊은 현안이 설치되어 방어력을 극대화하여 안에서 총포를 쏠 수 있게 벽을 2, 3층으로 쌓아 올린 성곽 구조물인 공심돈(空心墩) 특유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