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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북병은 명의 요동(遼東) 지역을 수비하는 군사이다. 조선에서는 명의 남쪽 지역 출신 군사를 남병으로 부르면서, 요동 지역 출신 군사들을 북병으로 불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북병은 몽골과 여진족 등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수비병이었다. 따라서 북병은 대부분 기병으로 구성되었다.
[조직 및 역할]
조선의 원병 요청을 받은 명은 1592년 6월 요동의 군사 1,000여 명을 원군으로 파병하였고[『선조수정실록』 25년 6월 1일], 이어 조승훈(祖承訓)이 거느린 명군이 조선에 파견되었다[『선조실록』 25년 6월 20일]. 8월에는 갈봉하(葛逢夏)를 의주로 보내 선조를 호위케 하였다[『선조수정실록』 25년 10월 1일]. 이때 조선에 파견된 명군이 바로 북병이었다. 이들 북병에게는 매달 안가은(安家銀) 5냥, 월량은(月糧銀) 1냥이 지급되었다.
[변천]
1592년 7월, 조승훈이 이끄는 약 3천여 명의 명군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이들은 대부분 기병으로 구성된 북병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이 주둔하던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패한 후 퇴각하였다. 명 조정은 다시 병력을 징발하였는데 북병은 물론이고 남병을 추가로 파견하였다. 이후 북병과 남병은 공을 다투었다. 그 결과 명군은 조선인의 목을 베어 전과를 증명하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