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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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소(乳牛所)

서지사항
항목명유우소(乳牛所)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타락색(酡酪色)
관련어낙소(酪酥), 낙죽(酪粥), 소락(酥酪), 소유(酥油), 유락(乳酪), 우유(牛乳), 타락(駝酪), 타락죽(駝酪粥)
분야생활 풍속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아.

[개설]
유우소(乳牛所)는 1404년(태종 4)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치한 공상(供上) 전담 아문이다. 우유(牛乳)는 소의 젓으로 유락(乳酪), 타락(駝酪)이라고도 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에는 유우소를 국가 상설기관으로 설치하여 우유와 낙소(酪酥)를 만들어 왕실에서 약으로 쓰고,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1404년에 설치하였으나 1421년(세종 3)에 폐지하였다.

[조직 및 역할]
유우소의 조직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모든 인원 200명을 매년 전직 승직시켜 5품에 이르면 별좌(別坐)가 되도록 하였다. 유우소를 폐지한 뒤에는 소속 인원이 있는 주·군의 군(軍)에 보충시켰다[『세종실록』 3년 2월 9일].

[변천]
1415년(태종 15)에 거우(車牛)의 반을 감하였고[『태종실록』 15년 8월 23일] 다음해에는 유우소에 다시 낙(駱)을 바치라고 하였다.

1421년(세종 3)에 유우소를 폐지하면서 소속 유우(乳牛) 중 상왕전(上王殿)에 지공(支供)하는 유우는 인수부(人壽府)에 소속시키고, 주상전(主上殿)에 지공하는 유우는 예빈시(禮賓寺)에 소속시켰다[『세종실록』 3년 2월 9일]. 1438년(세종 20)에는 타락색(酡酪色)이라 부르고, 유우소를 동부학당(東部學堂)으로 만들고, 동부학당을 북평관(北平館)으로 만들었다. 소를 기르는 목장을 동대문 북쪽에서 동소문에 걸치는 동산 일대로 옮겨 이곳을 타락산(駝酪山) 또는 낙산(酪山)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송수환, 『조선전기 왕실재정연구』, 집문당, 2002.

■ [집필자] 한복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