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활의 성능은 이미 고구려시대부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활의 몸체는 물소 뿔, 뽕나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만들어졌고, 그것을 잇는 데는 민어 부레풀을 이용하였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였다. 현재 활을 만드는 궁장(弓匠)과 화살을 만드는 시장(矢匠)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담당 직무]
궁장의 역할은 활을 제작하는 것이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재료의 확보와 인력 양성도 담당하였다. 『현종개수실록』에는 "북로(北路: 서울에서 함경도로 통하는 길)에는 궁장도 없고 궁각(弓角)도 없어 활을 만들 수 없으니, 각 지방에서 장인을 보내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로 보면 궁장 가운데 숙련된 양질의 기술을 가진 자들은 장인으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현종개수실록』 5년 3월 3일].
궁장은 부역제에 따라 번(番) 단위로 그 역할을 이행하였다. 즉 궁인(弓人)은 정액(定額)이 15명이었는데 이들을 3번(番)으로 나누어 5명씩 작업하였고, 시인(矢人)은 정액이 30명이었는데 이들도 3번으로 나누어 10명씩 함께 작업하였다. 체아(遞兒) 2명은 부전사(副典事) 1명, 부급사(副給事) 1명으로 하였다[『세조실록』 6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