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의 상황을 일자별로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
[개설]
『정난일기』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계유정난의 전개 과정 등을 날짜별로 정리한 일기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라서는 ‘정난일기(定難日記)’ 혹은 ‘계유정난일기(癸酉靖難日記)’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1464년(세조 10) 왕의 명으로 찬술되었는데, 그 내용은 계유정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입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발간 경위]
『정난일기』는 1464년 10월 왕명으로 편찬되었다. 당시 종친과 의정부 및 육조(六曹) 관원이 문안을 하자, 세조는 이들을 양심당(養心堂)으로 인솔하고 나아가 주연(酒筵)을 베풀었다. 세조는 이 자리에서 신숙주(申叔舟)를 비롯해 한명회(韓明澮), 최항(崔恒), 노사신(盧思愼) 등에게 명하여 『정난일기』를 찬술하게 하였다[『세조실록』 10년 10월 14일]. 1469년(예종 1) 예종이 이 책을 근거로 환관 이존(李存)의 공신 책록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음에서[『예종실록』 1년 6월 27일], 세조대에 편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지 사항]
일기가 전하지 않아 구체적인 서지 사항은 알 수 없다.
[구성/내용]
『정난일기』는 계유정난의 구체적인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만큼 계유정난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동향이나 그들의 활동 내역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종 때에는 이 일기를 참고하여 정난 관련 인물들의 공신 추록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후대에도 계유정난 관련 인물들의 행적을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