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동아시아 전통시대에 국가에서 편찬한 왕조 또는 국가 단위의 단대사 기전체 역사 및 당대사(當代史)인 편년체(編年體) 실록을 가리키는 역사 편찬물의 명칭.
[개설]
정사(正史)의 출발이었던 기전체(紀傳體)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시작되었지만, 왕조(나라)별로 편찬하는 단대사(斷代史) 기전체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기원을 두고 있다. 정사라는 명칭은 『수서경적지(隋書經籍志)』에서 처음 나왔고, 유지기(劉知幾)는 『사통(史通)』에서 『좌씨전(左氏傳)』과 『한서(漢書)』를 대표적인 역사 편찬 체재로 거론하면서, 특히 기전체 편찬에 관하여 상술한 바 있다.
[내용 및 특징]
기전체 사서는 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표(表)·서(書)·지(志)·사론(史論)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자의 행적을 본기(本紀)라고 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였고, 이는 후세에도 이어졌다[『세종실록』 5년 12월 29일]. 기(紀)란 여러 대상의 기준을 정하고 만물을 망라하여 분류하는 것이며, 편목의 범위로 볼 때 기가 가장 넓다. 본기라는 편찬 체재는 『춘추』의 경(經)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였고, 날짜와 달을 계속 이어서 계절과 해를 이루고, 왕을 기록하여 국가의 계통을 드러냈다. 본기라는 것은 편년체(編年體)를 위주로 천자 한 인물의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다. 기록할만한 큰 일이 있으면 본기의 연월에 드러내고, 자세히 기록할 사안이 있으면 관계된 인물의 열전에 부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세가(世家)는 각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인데, 그 편찬의 체재는 본기와 다르지 않았다. 제후를 낮추고 천자와 구별하려는 이유에서 다른 명칭을 택해 세가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세가라는 뜻은 나라를 열고 가문을 이어 대대로 계속된다는 말이다.
열전(列傳)은 편년으로 구성된 본기와 달리 사건의 나열로 되어 있다. 편년은 제왕의 사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는 것으로, 『춘추』의 경문(經文)과 같다. 사건의 나열이란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으로, 『춘추』의 전(傳)과 같다. 『춘추』가 전을 가지고 경문을 설명한 체제이듯이, 『사기』와 『한서』는 열전을 가지고 본기를 설명하였다.
표(表)는 족보와 세계(世系)의 연표(年表), 월표(月表)를 의미한다. 반고는 「고금인표(古今人表)」를 만들어 인품을 9품으로 구별하기도 하였다. 서(書)나 지(志)는 형법·예악·풍토·산천 등에 대한 기록인데, 일종의 분야사라고 할 수 있다. 그 출발은 삼례(三禮)이고, 『사기』와 『한서』에서는 각각 명칭을 서(書)와 지(志)라고 하였다. 문화사인 예문지(藝文志)가 예악지(禮樂志)·경적지(經籍志)라고도 불리듯이, 명칭이나 범주는 역사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론(史論)은 기전체 정사와 함께 발달하였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사론을 쓴 자신을 군자(君子)라고 불렀다.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에서는 각각 공양자(公羊子)·곡량자(穀粱子)라고 했으며, 『사기』에서는 태사공(太史公)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반고는 『한서』에서 찬(贊)이라 했고, 순열은 『한기』에서 논(論)이라 하였다. 흔히 논찬(論贊)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변천]
정사는 원래 기전체 단대사를 가리키던 용어인데, 중국 당나라 이후에 편년체 실록이 편찬되면서 실록도 정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사부(史部) 분류에서는 정사와 편년으로 나누었기에 실록은 정사와 구분되었겠지만, 조정의 공식 편찬물이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실록도 정사로 보았던 듯하다[『선조실록』 28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