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어떤 사람의 출신지를 가리는 데 있어서 부, 모, 처의 출신지를 3향이라고 하는데, 아버지의 출신 고을을 내향, 어머니의 출신 고을을 외향, 처의 출신 고을을 처향이라고 하였다. 내향·외향·처향 모든 지역에서 과거시험의 초시(初試)인 향시(鄕試)에 응시할 수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 개국 초 공신에게 봉군(封君)할 때 이민도(李敏道)의 경우에는 처향의 명칭을 따라 상산군(商山君)으로 봉했다. 이민도는 원나라에서 귀화한 인물로 고려에서 아내를 취하여 처향이 국내의 유일한 근거지였기 때문이다[『태조실록』 4년 3월 9일].
[변천]
과거시험에서 향시의 경우 내향, 외향, 처향 어느 곳에서나 응시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원래 경기도 양천(陽川)에서 태어났고 양천이 내향이라고 해도 통진(通津)에서 처를 취하였으면, 통진이 처향이 되어 그곳에서도 초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인조실록』 5년 3월 24일]. 서울의 과거시험은 경쟁이 심하여 현종대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선비들이 3향에 인연이 있는 곳에서 과거에 응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로 인하여 빚어지는 폐단도 컸다[『현종실록』 2년 9월 13일].
[참고문헌]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23: 조선 초기의 정치 구조』, 국사편찬위원회, 1994.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34: 조선 후기의 사회』, 국사편찬위원회, 1995.
■ 노명호, 「고려시대의 친족 조직」, 『국사관논총』3, 1989.
■ 박종기, 「고려시대 군현 지배 체제와 구조」, 『국사관논총』4,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