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금성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에 파괴된 성곽을 개축하였으며 이후 효종 때에 중수하여 중요한 병영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치 및 용도]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해발 603m)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담양읍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변천 및 현황]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조선시대 들어 1409년(태종 9)에 개축하였다[『태종실록』 10년 2월 29일].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으며 1622년(광해군 14)에 내성 안에 대장이 머무는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위에 낮게 쌓은 담인 성첩(城堞)을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형태]
산성의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 미터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