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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입학례는 조선시대에 왕세자나 왕세손, 또는 왕자군(王子君)과 종친 등이 성균관에 입학할 때 거행하는 의례를 말한다. 입학례는 통칭이며, 의례로서 정확한 명칭은 ‘입학의(入學儀)’이다.
[연원 및 변천]
입학례는 조선시대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에 나아가 문묘(文廟)에 배향하고 배움을 청하는 의례이다. 왕세자나 왕세손, 왕자군 등은 별도의 교육 기관인 시강원(侍講院)이나 강서원(講書院), 종학(宗學) 등에서 배웠지만, 입학례는 성균관에서 치렀다. 성균관에 입학함으로써 세자 등에 대한 교육의 모범이 문묘의 공자를 비롯한 유학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세자의 입학례는 『예기(禮記)』에서 세자가 국학에 입학할 때 입학례를 행했다는 데에 유래를 두고 있다. 조선 초에는 고려시대의 영향으로 왕실의 자손을 승려에게 보내어 교육시키기도 하였지만, 유신(儒臣)들의 건의에 따라 1403년(태종 3)에 원자가 성균관에 입학하였다[『태종실록』3년 4월 8일]. 1421년(세종 3)에는 왕세자가 입학할 때 ‘왕세자입학의(王世子入學儀)’가 만들어진 후 이에 따라 입학례가 거행되었다[『세종실록』3년 12월 23일].
[절차 및 내용]
왕세자를 기준으로 볼 때 입학례는 세자를 책봉(冊封)하는 책례(冊禮), 일종의 성년의식인 관례(冠禮)와 비슷한 시기에 거행되었다. 대체로 책례가 거행된 된 이후에 입학례와 관례가 거행되었으며, 입학례를 치른 후에 관례가 거행되었다.
입학례는 크게 출궁(出宮) → 작헌(酌獻) → 왕복(往復) → 수폐(受幣) → 입학(入學) → 수하(受賀)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그 가운데 입학의 구체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입학하는 날 왕세자는 작헌례(酌獻禮)를 마치고, 학생복을 입고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대문 동쪽에 선다. 백비(帛篚, 폐백을 담은 광주리로 저포(紵布, 모시) 3필, 주호(酒壺, 술병) 2말, 수안(脩案, 포(脯)를 놓는 상) 5정(脡)이 담김)를 왕세자 서쪽에 놓는다. 박사는 공복(公服)을 갖추고 명륜당 동쪽 계단 위에 선다. 장명자(將命者)를 통해 왕세자는 수업(受業)하기를 청하고 박사(博士)는 사양하며, 이를 세 번 반복하면 박사는 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왕세자는 백비를 잡고, 박사는 동쪽 계단으로 내려가 기다리고, 왕세자는 문의 왼쪽으로 들어가는데, 집사자는 주호와 수안을 받들고 따라가서 각자 정한 자리에 선다. 왕세자는 꿇어앉아 백비를 놓고 두 번 절하고, 박사는 답례로 절한다. 왕세자는 꿇어앉아 백비를 올리고, 주호와 수안[酒脩]을 받든 사람은 따라서 박사 앞에 놓는다. 박사는 꿇어앉아 백비를 받아 집사자에게 주고, 집사자는 꿇어앉아 주수를 가지고 물러난다. 왕세자는 계단 사이에 서서 두 번 절하고, 편차(便次)에 나가 기다린다. 박사는 상복(常服)으로 갈아입고 명륜당에 올라가 앉고, 왕세자가 박사 앞에 나아간다. 집사자는 강서(講書)를 박사 앞과 왕세자 앞에 놓는다. 강서(講書)와 석의(釋義)를 마치면 집사자는 책상과 책을 치운다. 왕세자는 서쪽 계단으로 내려가 편차로 가고 궁으로 돌아가는 것은 올 때의 의식과 같다.
왕자군, 왕세손, 종친의 입학례도 왕세자의 입학례에 따랐다.
입학례는 왕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즉 왕세자부터 왕세손, 왕자, 종친에 대한 교육이 모두 성균관에 기준을 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례이다. 성균관에 모셔진 유가의 도통(道統), 공자로 대표되는 유학의 정통을 왕실 교육에서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참고문헌]
■ 『大典會通』
■ 『國朝五禮儀』
■ 『國朝續五禮儀』
■ 『敎學定例』
■ 『增補文獻備考』
■ 김문식, 『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학동네, 2010.
■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 교육』, 민속원, 2008.
■ 정재훈, 「세종의 왕자 교육」, 『한국사상과 문화』31,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