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해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으로 굴강(掘江)·외호(外濠)·성호(城濠)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위치 및 용도]
주로 성곽과 고분에 위치하며,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성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다. 또한 해자는 식수의 확보나 성안의 물과 오물을 바깥으로 배출하는 기능 등도 담당했다.
[변천 및 현황]
1436년(세종 18) 11월 세종은 4군 지역 방어를 위해 작은 목책 가운데 없앨 만한 것은 없애고, 없앨 수 없는 것은 모름지기 돌로써 쌓고, 해자를 깊이 파고 화포를 많이 준비해야 적을 방어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1451년(문종 1) 1월 김종서는 의주(義州)에 성을 높게 쌓고, 해자를 깊게 파서 공격과 수비에 대비하라고 했다. 이 일은 4월에 마무리되었다. 8월에는 전라도 각 고을 성의 해자를 팠다. 그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순천부(順天府) 읍성(邑城)은 둘레가 3,383척(약 1㎞), 높이가 12척(약 4m)인데, 해자의 둘레는 3,701척(약 1㎞)이다. 광양현(光陽縣) 읍성은 주위가 1,812척(약 550m), 높이가 7척 6촌(약 2m),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1m)인데, 해자의 둘레가 1,995척(약 605m)이다. 무안현(務安縣) 읍성은 둘레가 2,700척(약 818m), 높이가 11척(약 3m),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1m)인데, 해자의 둘레가 2,893척(약 877m)이다. 강진현(康津縣) 내상성(內廂城)은 둘레가 2,225척(약 674m), 높이가 10척 8촌(약 3m)이며, 성가퀴의 높이는 2척 4촌(약 0.7m)인데, 해자의 둘레가 2,597척(약 787m)이다. 임피현(臨陂縣) 읍성은 둘레가 3,095척(약 938m), 높이가 10척(약 3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3m)인데 해자의 둘레는 3,075척(약 932m)이다. 고부군(古阜郡) 읍성은 둘레가 1,803척(약 546m), 높이가 9척(약 3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1m)인데, 해자는 성터가 높고 험하여 파기가 어려웠다. 무장현(茂長縣) 읍성은 둘레가 1,470척(약 445m), 높이가 7척(약 2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1척(약 0.3m)이며, 문이 2개소에 있는데 옹성이 있고, 해자의 둘레는 2,127척(약 645m)이다. 부안현(扶安縣) 읍성은 둘레는 1,500척(약 455m), 높이가 7척(약 2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1척 5촌(약 0.5m)인데, 해자는 성터가 높고 험하여 파기가 어려웠다.
경상도와 충청도는 다음과 같다. 김해부(金海府) 읍성은 둘레가 4,418척(약 1,339m), 높이가 13척(약 4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2척(약 0.6m)이며, 적대가 20개소, 문이 4개소인데 옹성이 있고, 성가퀴가 931개이며, 성안에 냇물이 1개소, 우물이 28개소이고, 해자의 둘레는 4,683척(약 1,419m)이다. 창원부(昌原府) 내상성은 둘레가 3,775척(약 1,144m), 높이가 12척 6촌(약 4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1척 8촌(약 0.5m)이며, 적대가 12개소, 문이 4개소인데 옹성이 있고, 성가퀴가 635개이며, 해자의 둘레는 4,060척(약 1,230m)이다. 남해현(南海縣) 읍성은 둘레가 2,806척(약 850m), 높이가 12척(약 4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1m)이며, 적대가 13개소, 문이 3개소인데 옹성이 있고, 성가퀴가 553개, 성안에 샘이 3개소, 작은 도랑이 1개소 있고, 해자의 둘레가 3,007척(약 911m)이다. 비인현(庇仁縣) 읍성은 둘레가 1,933척 8촌(약 586m), 높이가 평지에는 11척(약 3m)이고 높은 곳은 9척(약 3m)이며,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1m)이고, 적대가 5개소, 문이 3개소에 그중 하나는 옹성이 없고, 성가퀴가 423개이며, 성안에 우물이 3개소, 해자의 둘레는 2,152척(약 652m)인데 간혹 막혀 있었다. 보령현(保寧縣) 읍성은 둘레가 2,109척(약 639m), 높이가 12척(약 4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2척(약 0.6m)이며, 적대가 8개소, 문이 3개소인데 그중 1개소는 옹성이 없고, 성가퀴가 412개이고, 해자의 둘레는 2,190척(약 663m)이다. 해미현(海美縣) 내상성은 둘레가 3,352척(약 1,016m), 높이가 12척(약 4m)이고, 성가퀴의 높이는 3척(약 1m)이며, 적대가 18개소 내에 16개소는 아직 쌓지 않았고, 문이 4개소에 옹성이 없으며, 성가퀴가 688개이고, 해자의 둘레는 3,626척(약 1,099m)이다. 1466년(세조 12)에는 경주(慶州) 북천(北川)의 물길이 바로 읍성으로 향하고, 또 성 밑에 해자가 모두 메어서 막혔으므로 제방과 해자를 수축하게 했다[『세조실록』 12년 1월 19일]. 1488년(성종 19)에는 의주 성(城)의 해자가 협착되어 수축하도록 했다[『성종실록』 19년 4월 23일].
[형태]
[관련사건 및 일화]
1392년 11월에 졸한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성산백(星山伯) 배극렴은 합포원수(合浦元帥)가 되어 성을 쌓고 해자를 파서 도망하여 떠도는 사람들을 모아 살도록 하였다[『태조실록』 1년 1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