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조선시대에 왕이나 세자가 신하들과 모여 함께 공부하던 경연이나 서연 가운데 아침에 시행하였던 정규 강의.
[개설]
조선시대에는 왕이나 세자가 하루 세 번 신하들과 함께 공부하였는데, 이것을 왕의 경우 경연, 세자의 경우 서연이라 하였다. 아침·낮·오후에 이루어진 강의를 각각 조강(朝講)·주강(晝講)·석강(夕講)이라 하였다. 세 차례 이루어지는 정규 강의는 법강이라고도 한다. 특히 조강은 다른 강의에 비해 참여 인원이 가장 많았으며, 법강의 중심이 되었던 강의이다. 조강은 왕의 일과(日課) 가운데 상참(常參)·시사(視事)·윤대(輪對)에 이어 시행되었으며, 명칭은 조강이지만 실제로는 새벽에 시행되었다.
[내용 및 특징]
조강은 왕이나 세자가 신하와 아침에 모여서 경서(經書)와 사서(四書)를 공부하던 강의이다. 보통 조강·주강·석강 가운데 조강에 경연관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였다.
조강에 참석한 관원은 영사(領事)[議政] 1명, 지사(知事)[정2품]·동지사(同知事)[종2품] 중 1명, 특진관(特進官) 2명, 승지(承旨)·홍문관(弘文館) 상번·하번 및 사헌부·사간원 각 1명, 주서(主書) 1명, 한림(翰林)[史官] 상번·하번 각 1명이 참석하였다. 주강과 석강에 지사·동지사 중 1명, 특진관·승지·홍문관 상번·하번 각 1명, 무신(武臣) 1명, 종친(宗親) 1명이 참석한 것에 비해 조강의 참석 인원이 많았다.
조강에서 사용하는 강의 교재는 대체로 경서나 사서, 삼경(三經) 등 경학 위주의 교재가 사용되었고, 드물게는 사서(史書)를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강은 하루 전날 승정원에서 분판(粉板)을 걸어 게시하기를, ‘내일 아무 시각에 본관(本館)에서 강(講)한다.’ 하였다. 책색서리(冊色書吏)는 곧 차비문(差備門) 밖에 나아가서 대전별감에게 말하여 왕이 볼 책을 내어주기를 청하고 당번으로 들어올 것을 알렸다. 또한 강할 범위를 정하여 서사(書寫)를 시켜서 붉은 점으로 강할 책에 구두점을 찍게 하였다. 책리는 먼저 상·하번을 확인하고, 두 번째는 강할 범위의 본문을 교정해 갖춘 단자(單子)를 확인하여 왕이 볼 책과 함께 대내(大內)에 도로 바쳤다.
상세한 조강 당일의 절차는 『춘관통고(春官通考)』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조강을 하는 당일 평명(平明, 해 뜨는 시각)에 전설사(典設司)는 영경연사·지경연사·특진관·옥당·승지·사관·양사(兩司)의 자리를 각각 방향에 맞추어 설치한다. 모든 관원이 자기 자리에 나간 후 영사가 합(閤)에 이르러 자리에 앉으면 모든 관원은 영사에게 차례로 나가 절한다. 정해진 시간 1각(刻)[약 15분] 전에 옥당(玉堂)의 상·하번이 영사 앞에 나가고, 영사가 책을 펴면 관원은 모두 책을 편다. 상번이 새로 1편의 음을 읽고, 마친 후에 영사가 책을 덮으면 모든 관원 역시 책을 덮는다. 상·하번이 자리에 돌아와 앉은 후 하번 사관은 좌목단자(座目單子)를 가지고 영사·지사·특진관·승지에게 무릎 꿇고 보인다. 이후 서리에게 가서 좌목단자를 다시 주면 서리는 상·하번과 양사에게 무릎 꿇고 보인다. 금루관(禁漏官)이 정시좌목(正時座目)과 정시단자(正時單子)를 아뢰면 별감(別監)을 불러 들어가서 아뢰고, 사알이 승지에게 가서 전좌(殿座)[왕이 정전(政殿)의 옥좌(玉座)에 나와 앉는 것]를 전한다. 모든 관원은 좌목에 따라 각각 책자를 가지고 전내에 들어가 각각의 위차에 엎드리는데, 습강의(習講儀)대로 한다. 왕이 책을 열면 영사 이하도 책을 펴고, 왕이 전에 배운 음을 다 읽으면, 옥당의 상번이 새로 배울 음을 읽고 왕도 따라 읽는다. 상·하번이 차례로 글의 뜻을 아뢰고 마치면 영사·지사·특진관·참찬관이 글의 뜻을 진술한다. 모든 강을 마치고 왕이 책을 덮으면, 영사 이하도 책을 덮고 차례대로 나온다.
[변천]
경연에서 조강이라는 이름으로 아침 강의가 기록되는 것은 단종 때부터이다[『단종실록』즉위년 6월 16일]. 이전까지는 대개 왕의 일과로서 상참·시사·윤대에 이어 경연이 이어졌다. 이때의 경연은 조강을 의미하였다. 조강의 참석 인원도 단종 때에는 지경연 이하 승지 각 1명, 낭관 2명 외에 대간·사관 각 1명이 참여하는 단출한 형태였다[『단종실록』즉위년 6월 16일]. 이후에 점차 영사, 특진관, 홍문관 등의 관원이 추가되었다. 중종 때에는 조강에만 영사가 참여하던 것에서 재상은 조강이나 주강, 석강에 경연의 직을 가지고 있는 여부와 상관없이 참석시키기도 하였다[『중종실록』12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