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전도와 도별도, 군현 지도뿐 아니라 세계지도인 천하도, 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등의 외국 지도, 그리고 요계관방도와 같은 군사지도 등 370종의 지도를 총 8첩에 수록하였다. 『해동지도』는 국가 차원에서 제작한 지도책으로 지도의 여백에 주기(註記)를 넣어 지도에 지리지를 결합한 형식이다.
[내용 및 특징]
『해동지도』는 천하도와 같은 세계지도부터 십삼성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유구도, 왜국전도 등 외국 지도, 조선여진분계도, 요계관방도와 같은 국경 지역 지도, 조선 팔도의 도별 지도, 330여 군현지도, 군사 시설인 진보(鎭堡) 지도, 높고 험한 요새지를 그린 영애도(嶺隘圖), 도로도 등 다양한 유형의 지도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제4첩에는 서북피아양계전도, 제8첩에 대동총도 등 대형 낱장 지도가 포함되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경기도, 도성, 강도, 송도, 남한산성과 같은 지도는 양면에 걸쳐 그리고 주기의 내용이 많은 경우 여백에 주기를 모두 기록하지 못하고 설명만 기록하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의 군현지도에는 지도와 주기가 구분되었는데, 지도에는 산천, 면, 관아, 역원, 제언(堤堰), 교량, 서원, 향교, 누정, 능묘 등의 고적과 단묘, 강계(疆界), 창고 등이 기록되었다. 주기에는 호구, 전답, 곡물 총수, 군병 총수 등 인문 정보가 상세히 적혀 있다.
『해동지도』는 도별(道別)로 작성된 원본을 일차 정서한 지도로 추정된다. 전체 지도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채색과 산지의 표현 등 지도를 그린 기법, 주기의 내용과 형식 등에서는 도별로 차이를 보인다.
도별 호구는 1735년경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의 『관동지도』에 기록된 도별 호구 자료와 동일한 수치로 기록되어, 이를 참조하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군현지도에 기록된 인구는 편차가 심하여 기준 시기를 찾기 어렵다. 경상도 군현지도는 1740년대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변사지도인 『영남지도』와 대부분 일치하며, 황해도 군현지도는 비변사지도인 『해서지도(海西地圖)』와 비교할 때, 호구가 적게 기록되어 그 이전 시기의 인구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군현지도에 기록된 호구는 1740년대의 자료로 볼 수 있다.
[변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해동지도』의 영향을 받은 군현지도집으로 『지승』, 『여지도』, 『광여도』를 들 수 있다. 이들 지도는 지도를 중심으로 주기를 적은 군현지도집의 전형이다. 『해동지도』는 『지승』에 양식적인 영향을 주었고, 『여지도』는 『광여도』와 지도 제작 방식이 일치하여 같은 계통의 지도로 추정된다. 산의 연맥과 채색법, 집을 그리는 옥우법(屋宇法) 등에서 『여지도』와 『광여도』는 19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