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시대 유교 이념 중 ‘충(忠)’은 ‘효(孝)’와 함께 국가 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인식되었다. 충효 이념을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충신, 효자, 열녀들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설명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나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등을 편찬하였으며 왕실에서는 현명한 재상이나 간신(諫臣), 열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병풍으로 꾸며 성찰의 자료로 이용하였다. 이와 같이 감동을 유발하고 본보기나 경계로 삼을 만한 그림을 감계화(鑑戒畵)라고 하는데, 유교 이념 국가였던 조선시대에 특히 중요시되었다.
[내용 및 특징]
충신도(忠臣圖)에는 현명한 재상, 간신, 열사 등이 포함되는데, 세종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졌다. 1431년(세종 13) 세종은 효자, 충신, 열녀의 이야기로 구성된 『삼강행실도』의 간행을 지시하였고 1434년(세종 16) 4월에 『삼강행실도』를 반포하였다. 『삼강행실도』의 체재는 도(圖), 전(傳), 시찬(詩贊)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충신도는 110개의 고사를 수록하였는데, 이 중 한국 고사는 17개이다. 17개의 한국 충신 고사 중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김원계(金原桂)의 이야기는 제목만 있을 뿐 글과 그림은 없었다. 1431년 세종은 경연에서 정몽주와 길재가 변함없이 절개를 지켰으므로 얼굴을 그리고 찬을 지어 충신도에 포함시키라고 명했다〔『세종실록』 13년 11월 11일〕. 그러나 이후의 『삼강행실도』에도 정몽주 등의 초상화가 없는 것으로 볼 때, 끝내 그들과 관련한 그림과 글은 실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강행실도』는 1434년의 세종판을 시작으로 1490년의 성종판, 1579년의 선조판, 1726년의 영조판 등 지속적으로 복각되었고, 1514년의 『속삼강행실도』, 1617년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797년의『오륜행실도』등 행실도류 판화가 조선시대 내내 중요시되어 제작되었다.
이후 탕평책이 실시되던 숙종 연간에는 충신의 일화를 다룬 감계화의 수요가 많았고 기존에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과 관련된 충신도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즉 장군으로서 한(漢)의 주아부(周亞夫), 촉(蜀)의 관우(關羽), 당(唐)의 곽자의(郭子儀), 북송(北宋)의 악비(岳飛), 재상으로서 하(夏)의 이윤(伊尹), 상(商)의 부설(傅設), 주(周)의 강여상(姜呂尙), 촉의 제갈량(諸葛亮), 북송의 문천상(文天祥), 간신으로 한의 주운(朱雲), 당의 위징(魏徵) 등 여러 충신 열사의 일화가 대거 등장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양만춘(楊萬春), 고려의 충신 길재, 정몽주, 이존오(李存吾), 조선의 사육신(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박팽년·유응부),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상용(金尙容)·심현(沈誢)·이시직(李時稷) 등이 문집 내 화상(畵像)이나 초상화 등으로 제작됨으로서 충신에 대한 감계관(鑑戒觀)을 형성하였다.
[참고문헌]
■ 정병모, 『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2000.
■ 김영욱, 「歷代 君臣 사적을 그린 조선시대 王室 鑑戒畵」,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발표문, 2014. 4.
■ 송일기·이태호, 「조선시대 ‘행실도’ 판본 및 판화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 21, 서지학회, 2001.
■ 송일기·이태호, 「초편본 『삼강행실효자도』의 편찬과정 및 판화양식에 관한 연구」 25, 서지학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