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시대에는 왕의 초상을 영정 또는 어진(御眞), 어용(御容)이라고 하였다. 어진을 그리는 방식은 직접 현왕을 보고서 그리는 도사(圖寫), 선왕의 영정을 토대로 하여 다시 그리는 모사(模寫), 선왕이 돌아가신 후 기억에 의지하여 그리는 추사(追寫)가 있었다. 추화(追畵)라고도 한다.
[유래]
조선전기에 선왕 선후의 옛 모습을 바라보고 추모하기 위해 선원전(璿源殿) 봉심이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를 위해 초상화를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왕이나 왕후의 초상을 그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명종대의 기록에 따르면 세자 때 죽은 덕종의 어진을 성종이 최경에게 추사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추사한 최초의 사례이다. 성종의 어진 또한 승하한 후에 그렸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1545년에는 중종의 어용을 추사하였다[『인종실록』 1년 1월 22일]. 중종이 생전에 어진을 그리지 않아 옮겨 그릴 원본이 없자, 어용의 기억을 더듬어 그린 후 인종과 내정에서 살펴보고 제대로 그려졌다고 인정하였다. 훗날 이것이 너무 닮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사왕과 내정에서 인정한 본이라 하여 수리한 후 보존하였다[『명종실록』 4년 9월 14일]. 인종도 역시 생전에 그려둔 어진이 없었으나, 유교(遺敎)에 의하여 추화하지 않았다[『명종실록』 즉위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