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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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린국서폐의(受隣國書幣儀)

서지사항
항목명수린국서폐의(受隣國書幣儀)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빈례(賓禮)
관련어연린국사의(宴隣國使儀)
분야왕실
유형의식 행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이웃 나라, 즉 인국(隣國)의 국서와 폐백을 받는 의식.

[개설]
교린 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에서 일정 목적을 띠고 국서(國書)와 폐백을 가져왔을 때 이를 받기 위해 거행하는 의식이다. 국서와 폐백을 받고, 왕은 교지(敎旨)를 선포하며, 이웃 나라 왕의 안부를 묻고, 사신을 위로하는 순으로 의례를 거행하였다. 행사 2일 전에 예조(禮曹)가 내외 관원에게 각각의 직책에 충실할 것을 선포하며 의례 준비에 들어간다. 국서와 폐백은 예조 정랑(正郎)이 받아 놓는데, 국서는 북쪽에, 폐백은 남쪽에 둔다. 의례를 거행할 때 국서는 전교관(傳敎官)인 승지(承旨)가 왕 앞에 가지고 들어가 아뢰며, 왕의 교지도 아울러 선포하고 전달한다. 교지는 이웃 나라의 통사(通使)가 받는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에 일본·유구국(琉球國) 등의 인국과의 외교는 교린(交隣)의 예로 행해졌다. 중국과의 외교가 사대(事大)의 예로 이루어진 것과 차이가 있다. 중국 사신이 가져온 황제의 조서(詔書)나 칙서(勅書)를 맞이하는 의례는 영조서의(迎詔書儀), 영칙서의(迎勅書儀)라 하여 오례 중 가례(嘉禮)의 하나로 행했지만 그 외의 이웃 나라 사신이 가져온 국서를 받는 의례는 빈례(賓禮)의 하나로 행해져 차별화하였다. 이웃 나라의 국서와 폐백을 받고 왕의 교지를 선포하고 전달한 후 왕의 안부를 묻고 사자를 위로하는 절차가 의례의 핵심을 이룬다. 세종대에는 이웃 나라의 사신이 인정전(仁政殿)에서 예를 표하기도 했다[『세종실록』 5년 12월 25일]. 의례 절차는 『세종실록』 「오례」에 처음 보인다.

[절차 및 내용]
행사 1일 전 근정전(勤政殿)에 왕의 어좌(御座)를 비롯하여 의례에 필요한 여러 기물과 의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대를 준비해 놓는다. 행사 당일에는 사자(使者)를 비롯하여 의례에 참여할 사람들의 자리를 배치한다. 의장을 갖추어 왕의 호위를 준비하는 첫 번째 북 신호인 초엄(初嚴)이 울리면 의장과 군사를 세워 놓고, 왕을 위한 여(輿)와 연(輦), 어마(御馬) 등을 벌여 놓는다. 예조 정랑은 국서와 폐백을 근정전의 섬돌[殿階] 위에 배열해 놓는데, 국서는 북쪽에, 폐백은 남쪽에 둔다. 왕이 등장하기 전에 대오를 갖추기 위해 치는 두 번째 북 신호인 이엄(二嚴)이 울리면 상서원(尙瑞院)의 관리는 보(寶)를 받들고 사정전(思政殿)의 합문 밖에서 대기한다. 왕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사정전에 나오면 근시와 집사관은 4번 절하는 의례[四拜禮]를 행한다. 채비의 완료와 왕의 입장을 알리는 세 번째 북 신호가 울리면 사자는 문 밖의 자리[門外位]로 나아간다. 종소리가 그치고 안팎의 문을 열면 의장(儀仗)이 움직이고 고취(鼓吹)를 연주하는 가운데 왕이 여를 타고 나온다. 왕이 문에 들어서면 고취의 연주는 그치고 헌가(軒架)의 연주가 시작된다. 왕이 어좌에 오르면 향로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상서원 관원이 보를 받들어 안(案)에 놓으면 연주를 그치고, 모든 호위 관원은 왕을 호위한다.

모시는 신하들이 음악에 맞추어 4번 절하는 사배례를 행한 후 사자가 자리에 나아가면 앞의 예와 같이 4번 절한다. 전교관이 국서를 가지고 들어가 왕에게 아뢴 후 왕의 교지를 받고 동쪽 문으로 나와 서쪽을 향해 교지를 선포한다. 객사(客使)가 전(殿)에 오른다. 통사가 교지를 받고 사자를 인도하여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꿇어앉으면 사자의 수행원인 반종(伴從)도 모두 꿇어앉는다. 왕이 사신의 나라 왕의 안부를 묻고 사자를 위로하면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는 엎드렸다가 일어나고 반종도 엎드렸다 일어나 바로 선다. 통사는 정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나가고 수행원도 따라 나간다.

모시는 신하가 절하는 자리로 돌아와 사배례를 행한 후 판통례(判通禮)가 어좌 앞으로 나아가 예가 끝났음[禮畢]을 아뢰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면 음악이 연주된다. 성종대에는 좌통례(左通禮)가 이를 담당하였다. 왕이 어좌에서 내려와 여를 타고 문을 나서려 하면 고취를 연주한다. 왕이 사정전으로 돌아가면 고취도 연주를 그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통문관지(通文館志)』
■ 『춘관통고(春官通考)』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집필자] 송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