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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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옥(佩玉)

서지사항
항목명패옥(佩玉)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면복(冕服), 원유관복(遠遊冠服), 적의(翟衣), 제복(祭服), 조복(朝服)
동의어대패(大佩), 잡패(雜佩), 패(佩)
관련어강사포(絳紗袍), 곤복(袞服), 규(圭), 대(帶), 대대(大帶), 석(舃), 수(綬), 현의(玄衣)
분야생활 풍속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제복과 조복을 입은 다음 대(帶) 위의 양쪽 허리에 거는 옥으로 만든 장신구.

[개설]
왕과 왕세자의 면복(冕服)과 강사포(絳紗袍), 왕비의 적의(翟衣), 백관의 제복(祭服)과 조복(朝服)의 대 위에 거는 장신구이다. 패옥의 맨 위에는 금 갈고리가 있어 대대나 혁대에 건다. 옥은 미(美)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겼으며,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패옥은 옥과 옥이 부딪쳐 소리가 나므로 오음에 합치될 뿐 아니라 옥 부딪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사심이 들지 않도록 경계하고자 했다. 옥 부딪치는 소리는 행동의 경중을 나타내므로 움직임에서 규율을 만들었다.

[연원 및 변천]
고려 공민왕 때 중국에서 면복과 원유관포를 받을 때 면복에만 패옥이 있고 원유관포에는 규와 패옥이 없었으므로 이를 통용한 것으로 이해했다[『세종실록』 19년 8월 28일].

패옥은 중국에서 무역해 왔다. 그러나 호조의 경비가 넉넉지 않아 그에 관해 논의하였는데, 진기한 노리갯감이 아니라 법복에 소용되는 기물이므로 다른 물건의 무역을 모조리 줄인다 할지라도 패옥만은 무역해야 한다고 했다[『광해군일기』 1년 5월 2일].

백관의 패옥을 보면,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3품은 조복과 제복에 모두 번청옥(燔靑玉)을 사용했고, 4~9품은 번백옥(燔白玉)을 쓴다고 했으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문무관 관복의 패옥에는 약옥주와 민옥을 사용한다고 했다.

1651년(효종 2) 부묘(祔廟)할 때 백관의 복색을 정했는데 양관은 풀 먹인 종이에다 금물을 발라 날짜를 맞추도록 하였으며, 패옥은 사옹원으로 하여금 저축해 둔 미포를 내어 만들도록 하되 도성에 있는 장인(匠人)만을 사역하도록 했다. 이로 보아 국내에서 구운 옥으로 패옥을 만들어 나눠주었음을 알 수 있다[『효종실록』 2년 6월 14일].

영조대에는 협시내관의 제복에 패옥을 차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조신들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치를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영조실록』 32년 1월 30일]. 현전하는 조복도에서 패옥을 보면,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 실려 있는 패옥의 구성과 차이가 있으며, 모두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형태]
『국조오례의서례』에 수록된 패옥을 보면, 패는 2개로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옆구리에 각각 찬다. 왕과 왕세자의 패옥은 위에는 금구로 형(衡)을 달고, 다음에 중형을, 가운데에는 거(琚)와 우(瑀)로 한다. 아래에는 쌍황이 있고 충아(衝牙)는 쌍황 사이에 있다. 또 쌍적이 충아와 쌍황 사이에 있으며, 약옥주로 꿴다. 형, 충아, 거, 황(璜), 우(瑀)는 모두 민옥으로 한다.

문무관의 패옥은 동구(銅鉤)로 형을 설치하고, 다음은 중형을 달고, 가운데에는 거와 우가 있고, 아래에 충아를 단다. 쌍황은 중형의 양쪽에 있고, 쌍동은 충아의 양쪽에 있으며, 약옥주로 꿴다. 형, 거, 우, 쌍황, 충아, 적자는 모두 민옥으로 한다. 왕비와 왕세자빈의 패옥도 왕의 것과 같다. 그러나 『경국대전』에는 1~3품의 조복과 제복에 거는 패옥은 번청옥(燔靑玉)으로 하였으며, 4~9품은 번백옥(燔白玉)으로 했다. 한편 패옥은 소수(小綬)와 함께 달려 있다. 소수 역시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소수가 없는 경우 패대(佩袋)에 넣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세종 황제가 대궐의 계단을 오를 적에 시신(侍臣)이 차고 있던 옥패가 바람에 날려 황제의 옥패와 서로 얽힌 일이 있은 후에 내려진 조처이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2007.
■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2006.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 [집필자] 이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