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검은 베로 만든 일종의 두건으로 유관 또는 유건이라고 한다. 유생이 평상시 입는 포에 갖추어 쓰개로 썼다. 보통 성균관이나 집 안에서만 썼고 거리에서는 잘 쓰지 않았다. 벼슬하지 않은 선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연원 및 변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제학생도(諸學生徒)는 검은 베로 만든 건[緇布巾]을 쓰고, 단령을 입고, 실띠[條兒]를 띠며, 선비들은 청금(靑衿)을 입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치포건은 유건을 가리킨다.
중국의 유건은 민자(民子)와 비슷한 모양이어서 민자건(民子巾)이라고도 한다. 대[竹]로 엮어 검은 베로 싸거나 종이를 바르고 칠을 하여 평시뿐 아니라 비가 올 때에도 썼다.
1585년(선조 18) 조선의 조정에서는 조선의 유관을 중국과 같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왕이 묻자 유관을 만드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같게 만드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는 대화가 오갔다[『선조실록』 18년 4월 17일]. 조선의 유관도 민자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검은 베, 모시 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의 유관과는 차이가 있다.
[형태]
유관의 형태가 민자와 비슷해서 민자건이라고도 한다. 네모지게 박은 천의 위를 조금 꺾고 뒷면을 반듯하게 세워 굽지 않게 한 후, 뒷면의 남은 부분을 접어서 앞면과 뒷면의 길이를 같게 만들어 주면 남은 폭이 좌우 양쪽으로 벌어져 귀가 나온다. 이 양쪽 귀를 반쯤 접어서 판판하게 하면 민자 모양이 된다. 갓끈처럼 끈을 달아 턱에 매도록 되어 있다. 유관은 하나를 마련하면 몇 해를 두고 아껴 쓰는 갓과 달리 각 가정에서 쉽게 박아 접어 만들 수 있어서 값도 싸고 만들기도 쉬웠다.
[용도]
유생들은 평상시 예관(禮冠)으로 도포, 창의, 중치막, 두루마기 등의 포를 입고 유건을 썼다. 향교에서 1년에 몇 차례씩 성현에게 다례(茶禮)를 지낼 때, 제사 지낼 때도 유생은 유건을 썼다. 상중(喪中)에는 베유건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