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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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無爲寺)

서지사항
항목명무위사(無爲寺)
용어구분전문주석
관련어형미(逈微), 가지산문(迦智山門), 무위갑사(無爲岬寺), 천태종(天台宗), 자복사찰(資福寺刹), 수륙사(水陸社), 조계종(曹溪宗), 대흥사(大興寺)
분야문화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에 있는 절.

[개설]
무위사(無爲寺)는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無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고려초 승려 형미(逈微)가 절을 중창하였다. 조선 태종 때 천태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고, 세종 때 극락보존이 건립되고 성종 때 수륙사(水陸社)가 설치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한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 절이었지만 조선중기 이후 점차 쇠락해 갔다. 1970년대에 절을 크게 중건하여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무위사사적(無爲寺事蹟)』에 의하면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도선(道詵) 국사(國師)가 중창했다고 한다. 하지만 절의 실제 역사는 10세기 초 선각(先覺) 대사(大師) 형미(逈微)가 절을 중창한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승려 형미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요청으로 무위갑사(無爲岬寺)에 머물며 절을 중수하고 널리 교화를 폈다고 하므로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라는 절로 이미 창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무위갑사는 건물이 58동에 이르는 거찰이었다고 전한다.

(2) 조선전기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 12월, 도강(道康, 현 전라남도 강진) 무위사는 천태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도강 무위사는 천태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본래 가지산계의 선종(조계종) 사찰이던 무위사가 천태종 소속의 사찰로 바뀐 점이 주목된다.

1430년(세종 12)에 극락보전이 건립되고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木造) 아미타삼존불도 이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성종 때 극락보전 후불벽이 만들어졌고 후불벽화인 아미타삼존도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무위사에 수륙재(水陸齋)를 열기 위한 수륙사가 설치되었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를 떠도는 영혼에게 공양을 드리는 불교 의식이며, 수륙사는 그와 같은 재를 지내는 공간이다.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진현(康津縣) 불우(佛宇) 조에,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이제 중수하고 이로 인해 수륙사로 한다."는 기록이 그것을 말해 준다.

(3) 조선후기

왜란과 호란의 전란 중에도 무위사는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아 절의 웅장하고 화려함이 인근 지역에서 으뜸이었다고 하나, 이후 쇠락하여 몇 개의 전각만 남았다. 1678년(숙종 4) 당간지주가 조성되고, 1739년(영조 15)에 미타전, 천불전, 시왕전 등의 전각이 중수되었다.

(4) 현대

1956년에 극락보전을 수리 보수하고 보존각을 새로 지어 벽화를 봉안했다. 경내에 있던 목조 건물은 극락전, 명부전, 요사채 뿐이었으나 1975년 선각대사편광영탑비와 사리탑 등에 대한 정화 불사에 이어 벽화보존각, 봉향각, 해탈문, 명부전, 천불전 등을 새로 지으며 옛 절의 모습을 되찾았다. 1991년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기존의 동쪽 요사를 증축했다.

[문화재]
무위사 극락전(無爲寺 極樂殿, 국보 제13호)은 1430년(세종 12)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한 건물이고, 내부에는 1476년에 그린 아미타삼존후불벽화와 그 전에 그렸다고 추정되는 아미타내영도와 석가설법도 등 29점의 불화가 있었는데, 삼존벽화와 백의관음 이외에는 보존각에 옮겨 전시되고 있다. 극락전 내부에는 목조 아미타삼존불상(보물 제1312호), 아미타후불벽화(보물 제1313호), 백의관음도(보물 제1315호) 등이 있다.

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無爲寺先覺大師遍光塔碑, 보물 제507호)는 무위사에 머물다 입적한 선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946년(고려 정종 1)에 조성한 전통 양식의 탑비로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씨를 썼다.

무위사3층석탑(無爲寺三層石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은 고려초의 석탑으로 2층 기단의 3층석탑이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가람고(伽藍考)』
■ 『무위사사적(無爲寺事蹟)』

■ [집필자] 윤기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