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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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사(逍遙寺)

서지사항
항목명소요사(逍遙寺)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교종(敎宗), 삼십육사(三十六寺)
동의어자재암(自在庵)
관련어이성계(李成桂), 원당(願堂)
분야문화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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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경기도 양주 소요산에 있던 절.

[개설]
경기도 양주(현 동두천시) 소요산에 있던 사찰로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조선 세종대 선교양종의 교종 18개 사찰에 들어갔고 태조의 원당이 되었다.

[연원]
삼국시대인 654년(신라 무열왕 1)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자재암(自在庵)으로 불렸다가 974년(고려 광종 25) 각규(覺圭)에 의해 중건된 후 소요사로 개칭하였다. 1153년(고려 의종 7)에 화재로 전소되었고 다음해 각령(覺玲)이 중창하였다.

[내용 및 변천]
『세종실록』 「지리지」 양주 항목에 따르면 태상왕이 된 태조가 절 남쪽의 행전(行殿)에 머물면서 몇 달에 걸쳐서 소요사의 그림들을 새로 그리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태조의 원당으로 지정되었다.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소요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소요사에는 소속 전지 150결, 거주하는 승려 70명이 허용되었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여말선초 대불교시책』, 일조각, 1993.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 [집필자] 김용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