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전라도 태인 모악산에 있었던 절.
[개설]
흥룡사(興龍寺)는 조선 태종 때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고, 세종 때 선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으나 1년 뒤 다른 사찰로 대체되었다. 고려 제2대 혜종(惠宗)의 사당이 있었던 나주(羅州) 흥룡사(興龍寺)와는 다른 사찰이다.
[변천 및 내용]
전라도 태인(泰仁)의 모악산(母岳山)에 위치해 있었다. 절의 개창과 관련된 자료가 전하지 않아 창건 연대나 배경 등을 알 수 없다. 1407년(태종 7) 12월 흥룡사를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한 것이 흥룡사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태종은 1406년(태종 6) 3월 공인한 11개 종파 242개 사찰을 제외한 나머지 사찰의 전민(田民)을 속공하였으며, 1407년 12월에는 11개 종파를 다시 7개로 축소 통합하면서 242개 사찰을 공인할 당시 유서 깊은 대가람이 누락되고 이미 없어진 사찰에 주지가 임명되는 등 문제가 있었다 하여 새로 88개의 명찰(名刹)을 선정해 기존의 자복사를 대체하였다. 흥룡사는 이때 자복사로 선정되었는데, 천태종 소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흥룡사에 대한 이전의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태종대 명찰로써 자복사에 선정된 것을 볼 때 여말선초 유서 깊은 사찰로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대의 7개 종파 지정과 자복사 선정은 불교 종파를 축소하고 사찰의 경제적 기반을 환수하려는 억불 정책으로, 이러한 기조는 세종대에도 계속되었다.
1424년(세종 6) 3월 유명무실해진 각 관(官)의 자복사를 모두 폐지하였고, 다음 달 세종은 기존의 7개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하고,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사찰만을 공인하였다. 천태종은 선종으로 통합되었는데, 흥룡사는 선종 18사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흥룡사의 전지는 80결이었는데, 70결을 더 받았으며, 거주하는 승려는 70명이었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1425년(세종 7) 5월 흥룡사는 산수가 좋은 곳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종 18사에서 탈락되었고, 대신 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가 선종 공인 사찰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흥룡사에 속했던 전지 150결이 모두 장안사로 이속되었다[『세종실록』 7년 5월 12일].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태인현 모악산에 흥룡사가 있다고 전하고 있어 16세기까지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이후 폐사되었다. 폐사된 시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고려시대 자료에 나오는 흥룡사는 전라도 나주 금성산(錦城山)에 있던 사찰로 태조비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가 혜종(惠宗)을 낳은 자리에 지었으며, 혜종 사후 혜종의 사당을 세웠다고 하여, 세종대 선종 18사로 지정되었던 본 흥룡사와는 다른 사찰임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