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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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물고(料物庫)

서지사항
항목명요물고(料物庫)
용어구분전문주석
관련어공정고(供正庫), 사도서(司䆃署), 사도시(司䆃寺)
분야생활 풍속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왕실의 내선(內膳)에 쓰이는 미곡(米穀)을 수입·지출하는 업무를 관장한 관아.

[개설]
조선 개국 초기에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요물고(料物庫)를 설치하였는데, 내선 미곡을 관장한 아문이다. 내선은 궁중의 왕과 왕족에 올리는 음식으로 특히 왕에게 진공하는 음식을 뜻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요물고의 전신은 고려시대의 비용사(備用司)이며, 이는 1311년(고려 충선왕 3) 요물고로 개칭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1392년(태조 1)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할 때 내선 미곡의 수입·지출하는 일을 관장할 목적으로 요물고를 설치하였다.

[조직 및 역할]
조선 개국 초기에 요물고를 설치하여 어선(御膳) 공상에 필요한 미곡의 수지를 담당하였고, 관원은 사(使, 종5품) 1명이고, 부사(副使, 종6품) 1명이고, 주부(注簿, 종8품) 2명이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1401년(태종 1) 관제개혁 때 요물고는 공정고(供正庫)로 호조(戶曹)에 속했으며[『태종실록』 1년 7월 13일], 왕실에서 소요되는 미곡과 장(醬) 등의 공급을 담당하였다.

[변천]
조선초기에 설치한 요물고는 1398년(태조 7)에 가회방(嘉會坊)(현 가회동)에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궐내에 새로이 건조하였다[『태조실록』 7년 5월 3일]. 1401년(태종 1) 관제개혁 때 명칭을 공정고로 바꾸었고[『태종실록』 1년 7월 13일], 1422년(세종 4)부터 도관서(導官署)로 바꾸었다[『세종실록』 4년 9월 25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한우근 외 역, 『譯註 經國大典-註釋篇』,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 송수환, 『조선전기 왕실재정연구』, 집문당, 2002.

■ [집필자] 한복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