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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익힌 콩을 띄워서 만든 메주에 소금과 물을 합하여 발효시킨 간장과 된장을 일컫는 말.
[개설]
장(醬)을 장(將)이라 했다. 온갖 맛[百味]의 대장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가 있어도 장맛이 좋지 못하면 맛있는 반찬을 만들기 어렵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대두(大豆)로 만들어 띄운 메주를 말장(末醬)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침장(沈醬)하여 발효시켜 얻은 보존성 조미료이다.
[만드는 법]
1815년(순조 15)경에 나온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장 담그는 방법이 나와 있다. 장 담그기 좋은 날은 병인일(丙寅日)·정묘일(丁卯日)·제길신일(諸吉神日)·우수일(雨水日)·입동일(立冬日)·황도일(黃道日: 춘분과 추분)이다. 삼복날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꼬이지 않으며, 해 뜨기 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다. 그믐날 얼굴을 북쪽 방향으로 두고 장을 담그거나 장독을 태세(太歲: 목성) 방향으로 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수흔일(水痕日)에 담그면 벌레가 꼬이고, 여섯 신일(辛日)에 담그면 맛이 좋지 못하다. 수흔일은 큰 달의 1·7·11·17·23·30일, 작은 달의 3·7·12·26일을 말하고, 여섯 신일은 신축일(辛丑日)·신묘일(辛卯日)·신사일(辛巳日)·신미일(辛未日)·신유일(辛酉日)·신해일(辛亥日)을 말한다. 벌레가 생기면 초오(草烏: 성탄꽃의 다년초)나 백부근(百篰根: 파부초의 뿌리) 4조각만 위에 얹으면 다 죽고, 청명일(淸明日: 춘분과 곡우 사이의 양력 4월 5·6일)에 꺾은 버들가지를 꽂으면 죽는다. 이 나무는 맛이 쓰다. 많이 넣지 말아야 한다. 중국 진대(晉代)의 학자 장화(張華)가 쓴 『박물지(博物志)』에 이르기를, 상현(上弦)과 하현(下弦) 그리고 대소조금 때 담그면 곰팡이가 핀다고 했다. 대소조금은 조수가 가장 낮은 음력 매월 초8일과 23일을 말한다. 장 담그는 물은 특별히 좋은 물을 써야 장맛이 좋다. 여름에 비가 갓 갠 우물물은 쓰지 않는다. 간수가 다 빠진 좋은 소금을 시루에 붓고 물을 붓는다. 이때 소금 1말당 물 1동이의 비율이다. 기다란 주걱으로 여러 번 저어 며칠 동안 덮어 두면 소금이 맑게 가라 앉아 냉수같이 된다.
장 담그는 독은 햇볕이 잘 들고 서늘한 곳에 놓아야 한다. 독이 기울면 물이 빈 쪽에 흰 곰팡이가 끼기 때문에 반듯하게 놓아야 한다. 메주가 빛깔이 누렇고 단단하지 못한 것은 늦게 쑨 메주로 좋지 않다. 빛이 푸르고 잘고 단단한 것이 일찍 쑨 메주로 좋은 것이다. 10여 일 동안 햇볕에 쬐어 말려서 돌같이 단단하게 되면 솔로 깨끗이 털어서 물에 두 번만 씻어 독에 넣는다.
메주가 너무 많으면 간장이 적게 생기고, 메주가 적으면 빛깔이 묽으며 맛이 좋지 못하다. 다소를 짐작하여 팔 한 마디가 채 들어가지 못할 정도를 남겨 두고 메주를 넣는다. 메주를 넣기 전에 독 밑에다 숯불을 두어 덩이 피워서 넣고 꿀 1탕기를 그 위에 붓는다. 꿀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메주를 넣는다. 메주를 넣은 뒤에 소금물을 독에 붓는다. 소금물이 싱거우면 메주가 뜨다가 도로 가라앉는다. 만일 그렇게 되면 소금물을 떠내고 알맞을 정도로 소금을 더 타면 메주가 바로 뜬다.
장독이 더러우면 맛이 좋지 않게 된다. 하루 2번씩 냉수로 물기가 없게 하면서 깨끗이 씻는다. 물기가 들어가면 벌레가 생기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장 담근 지 21일[세 이레] 안에는 초상난 집을 왕래하지 말고, 아이 낳은 집과 월경(月經) 하는 여인 그리고 낯선 잡인(雜人)을 가까이 들여서는 안 된다. 자주 살펴서 장이 넘지 않게 해야 한다. 장독 곁에 작은 독을 마련하여 메주 50장을 넣어 두고 간장을 담그고 뜨기 전에 장물이 줄어드는 대로 채우는 소금물인 제깃물을 하였다가 막 익어 넘을 때 아침저녁으로 바꿔서 100일 만에 뜨면 간장 빛이 검고 좋으나 분량이 적게 나온다. 그러므로 60일쯤에 뜨면 냉수 15동이들이 독에서도 맑은 간장 7동이는 나온다. 장 담글 때 기름기 없는 쇠볼기살 한 덩이와 전복 40~50개를 삶아서 독 밑에 넣고 메주를 얹어 담그기도 한다. 또 위에는 대추를 띄우기도 한다.
이상은 음력 5월에 침장(沈醬)하는 법에 대하여 장(將)으로서의 장(醬)을 잘 설명한 글이다. 장 담근 지 60일에서 100일 정도에 간장을 뜨고, 남은 것은 된장으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된장은 반드시 간장을 뜨고 남는 건더기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별도로 된장만을 위하여 메주덩이를 빻아서 소금을 합하여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규합총서』에는 메주 제조 방법에 대한 기술은 없다. 당시 음력 10월이 되면 집집마다 대두를 재료로 하여 메주를 만들었다.
대두를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커다란 가마솥에 붓고 물을 부어 무르도록 삶아 하룻밤 지낸 후에 건진다. 이것을 절구에 담아 문드러지게 찧어서 손으로 주물러 작은 수박만 한 크기로 둥글게 빚는다. 커다란 칼로 2개로 쪼개거나 한 번 더 잘라 반달같이 만든다. 이엉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고 벼를 담지 아니한 빈 섬인 공석(空石)으로 두껍게 덮어 다시 초가의 용마루나 토담을 덮는 짚인 용마름을 얹는다. 메주가 떠서 옷을 입으면 한 번 뒤집는데, 이렇게 뒤집기를 8~9차 하면 장이 완성된다.
[연원 및 용도]
궁 안에서는 메주를 만들지 않았다. 창의문(彰義門) 밖의 메주 전문가에게 추수철에 콩을 주어 만들게 하여 메주[末醬]를 진상(進上)하게 하였다. 이를 절메주라 하였다. 왕·왕비·대왕대비·왕세자·왕세자빈에 각각 소속된 수라간과 사도시(司䆃寺)·내자시(內資寺) 등에서 가져다가 각각 별개의 장소에서 음력 5월에 장을 만들었다.
궁중에 진상하는 메주를 절에서 만들지 않았음에도 절메주라 한 까닭은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절에서 만들어 궁중에 진상하던 법도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고려 때에는 전업 집단에 의하여 메주만 만드는 절이 있었으며, 이 절에서는 메주를 전매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된장·간장 섭취 역사는 나타난 기록으로만 보더라도 고구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지(三國志)』에는 “고구려인들은 장양(藏釀)을 잘한다.” 하였다. 시대가 내려가긴 하지만, 『해동역사(海東繹史)』는 『신당서(新唐書)』를 인용하여 발해의 명산물은 발해의 수도인 책성(柵城)의 시(豉), 즉 메주라 하였다.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683년 (신라 신문왕 3)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할 때 납채(納采)로 미(米)·주(酒)·유(油)·밀(蜜)·장(醬)·시(豉)·포(脯)·해(醢) 등을 135수레, 조곡(租穀)을 150수레 보냈다.
조선왕조의 장 담그는 법은 『규합총서』에 나타난 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궁에서도 간장과 된장은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를 마련하여 독에 담아 보관하고, 각종 찬품(饌品)의 조미료로 썼다. 간장(艮醬)·청장(淸醬)·초장(醋醬)으로 분류하여 구이(灸伊)·만두(饅頭)·편육(片肉)·전(煎)·회(膾)·잡채(雜菜)의 조미료로 사용했다. 또 된장은 장(醬)이라 하였다. 그래서 된장을 넣고 끓인 찌개나 탕은 장자(醬煮)·장증(醬蒸)·잡장(雜醬)이라 하여, 숭어를 재료로 했을 경우 숭어장자[秀魚醬煮]·숭어장증[秀魚醬蒸]·숭어잡장[秀魚雜醬]이라 하였다.
장은 일반 서민들의 구황식품도 되고 식량으로 간주되었는데, 1452년(문종 2) 문종이 평안좌도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유시하여 야인(野人)들에게 쌀·콩·소금·장을 갖춘 식량을 지급케 하였다[『문종실록』 2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