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개설]
연어(年魚, 鰱魚)가 가을철에 산란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 산란 직전에 잡아 알을 취한 다음 이것에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보존 식품이다.
[만드는 법]
연어알을 소금물로 살살 씻어서 채반에 건져 물기를 뺀다. 이것에 소금을 발라서 작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맨 위층의 연어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금을 뿌린 다음 뚜껑을 덮어 봉한다. 2주일이 지나면 꺼내 먹을 수 있다.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에는 연어알을 강원도의 고성·삼척·통천·회양·흡곡에서, 연어알젓[鰱魚卵醢]을 강원도의 간성, 함경도의 감영·길주·덕원·북천·안변에서 진공(進貢)케 하였다. 강원도 것은 음력 10월과 11월에, 함경도 것은 음력 8월과 9월에 공납을 받았다. 이렇듯 차이가 나는 것은 함경도 기후가 강원도보다 추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론 왕·왕비·대왕대비·왕세자·왕세자빈을 위한 물선(物膳)이 되었다. 연어알젓 자체가 진공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연어알젓을 만드는 현지의 전업집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어알과 연어알젓을 함께 공납 받아 연어알은 궁중의 수라간에서 젓으로 만들어져 수라상에 올렸고, 연어알젓은 양념만 하여 수라상에 올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1609년(광해군 1) 6월 2일 명나라로부터 사신이 입경하여 6월 19일 환국했다. 이들은 태평관(太平館)에 머물렀는데, 제공된 조반·중반·석반의 삼시반(三時飯) 반찬 중에 연어알젓이 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사신에게 선물로도 주었다. 1483년(성종 14) 도승지(都承旨) 이세좌(李世佐)에게 명하여, 상사(上使)와 부사에게 연어알젓 등을 주게 했다[『성종실록』 14년 9월 20일].
1795년(정조 19)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았다. 이때 혜경궁 홍씨 수라상에 연어알젓이 연어란해(鰱魚卵醢)란 명칭으로 수라상에 올랐다. 최고의 손님과 왕의 수라상에 올랐던 연어알젓은 상당히 귀한 밥반찬이었던 듯하다. 반가에서 나온 고조리서(古調理書)에서는 좀처럼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1670년(현종 11)경의 필사본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연어알을 햇볕에 말려 둔다. 쓸 때는 물에 담갔다가 간장국에 달여서 쓴다. 또는 작은 단지에 넣어 장독에 묻어 두었다가 쓰기도 한다.”고 하였다. 민가에서는 말린 연어알을 간장에 조려서 찬품으로 하거나, 장에 묻어 밑반찬으로 했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1923년에 나온『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연어알은 젓밖에는 할 것이 없다. 결을 삭혀 먹으면 맛이 매우 좋다. 찌개는 별로 좋지 않다. 왜냐하면 알이 톡톡 터지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연어알로 할 수 있는 조리방법은 젓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 귀한 연어알로 만들 수 있는 찬품은 그 맛에서 연어알젓을 뛰어 넘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