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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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淸醬)

서지사항
항목명청장(淸醬)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장(醬)
동의어장즙(醬汁)
관련어간장(艮醬), 감장(甘醬), 두시(豆豉), 말장(末醬), 염(鹽), 토장(土醬)
분야생활 풍속
유형음식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갓 담근 것으로 색깔이 진하지 않은 간장.

[개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서 누룩곰팡이가 피게 한 후 씻어서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면 메주 속의 식물성 단백질이 녹아 청장(淸醬)이 만들어진다. 문헌에서는 청장보다 간장(艮醬) 혹은 지령으로 표기되었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조미료이다. 제향에서는 제물로 쓰였으며, 군대에서는 무명에 색을 입히는 데도 쓰였다.

[만드는 법]
메주를 만드는 방법은 『산림경제(山林經濟)』「치선(治膳)」 ‘조장(造醬)’에 자세하게 나온다. “대두를 깨끗하게 씻어서 하룻밤 물에 담가 두었다가 꺼내서 약한 불에 삶는다. 맷돌로 갈아서 주먹 크기로 둥글게 빚어 짚에 담는데 층을 두어 쌓는다. 따뜻한 곳에 두어 곰팡이[黃衣]가 필 때를 기다린다. 곰팡이가 핀 메주를 햇볕에 내어 말렸다가 다시 따뜻한 곳에 둔다. 반복하면 자연히 마른다. 이것을 메주[末醬]라고 부른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간장 담그는 데 쓰는 물에 대해서 적어 두었다. “장 담그는 물은 각별히 좋은 물을 가려야 장맛이 아름다우니 여름의 비가 갓 갠 우물물을 쓰지 말고 좋은 물을 길어 큰 시루 독에 안치고 간수가 죄다 빠진 좋은 소금 1말을 시루에 붓는다. 물을 큰 동이로 가득히 되어 부으면 티와 검불이 다 시루에 걸린다. 소금과 물을 그대로 되어 메주의 다소와 독을 짐작하여 소금을 푼 후 큰 막대로 여러 번 저은 뒤 덮어 수삼일 두면 소금이 퇴청하야 냉수 같다.”라고 했다.

메주와 소금물의 양에 따라 간장의 맑기와 맛이 정해졌다. 이로 인해 왕실이나 관아는 물론이고 집집마다 간장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연원 및 용도]
『송자대전(宋子大全)』에서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는 없는 청장을 제향에 올리는 문제에 대해 송시열(宋時烈)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고례(古禮)에 음식물이 있으면 반드시 장을 주로 하였으므로 장을 식주(食主)라 칭한다. 또 음식물에는 다 각기 주로 하는 장이 있었으니, 『논어(論語)』에 이른바 ‘해당하는 장이 없으면 그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장이 이것이다. 『의례(儀禮)』의 「혼례도(婚禮圖)」에 장을 한가운데에 놓았으니, 제사에도 이를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종지에 담은 청장이 제례에서 제물로 쓰인다는 주장이다.

집안의 제사에서 청장을 제물로 올리는 문제는 조선시대 여러 학자에 의해 논의되었다. 비록 주자의 『가례』에는 청장이 제물로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주나라 때의 고례를 따라 사가(私家)에서도 청장을 제물로 올렸다. 왕실의 제향에도 청장이 쓰였는데, 다만 그 색이 너무 맑고 맛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청장이 한 차례 나온다. 지방의 한 군장이 임의로 군용품을 수집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많은 무명을 내어 청장에 적셔 말렸다.”고 한다[『영조실록』 4년 6월 7일].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규합총서』에서는 장 담근 지 21일 안에는 초상난 집과 아기 낳은 곳에 가지 말고, 생리 중인 여인과 낯선 잡인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규합총서(閨閤叢書)』
■ 『산림경제(山林經濟)』
■ 『송자대전(宋子大全)』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집필자] 주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