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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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艮醬)

서지사항
항목명간장(艮醬)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장(醬)
동의어장즙(醬汁), 청장(淸醬)
관련어두시(豆豉), 염(鹽)
분야생활 풍속
유형음식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콩으로 만든 메주를 소금물에 일정 기간 담가 두어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

[개설]
음식의 간을 맞추고, 채소를 절이고 구황식물의 독기를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조미료이다. 간을 맞추는 장이란 뜻으로 이두로 간장(艮醬)이라 불렀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지령’이라 적기도 했다. 한자로는 장(醬) 혹은 청장(淸醬)이라고 적었다. 청장은 경우에 따라 간장의 색이 맑은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만드는 법]
간장이란 말을 사용하여 조리법을 적은 책은 19세기 말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의전서(是議全書)』, 『음식방문(飮食方文)』이다. 이 책에서는 간장을 만드는 방법으로 메주 한 말에 물 한 동이, 소금 일곱 되씩 담되 늦게 담으면 소금을 좀 더 넣으라고 하였다.

메주 만드는 방법은 『산림경제(山林經濟)』「치선(治膳)」 ‘조장(造醬)’에 자세하게 나온다. 대두를 깨끗하게 씻어서 하룻밤 동안 물에 담가 두었다가 약한 불에 삶아 꺼낸다. 맷돌로 갈아 주먹 크기로 둥글게 빚어 짚에 담는데 층을 두어 쌓는다. 따뜻한 곳에 두어 곰팡이[黃衣]가 필 때를 기다린다. 곰팡이가 피면 햇볕에 내어 말렸다가 다시 따뜻한 곳에 두어 자연히 마르도록 한다. 이것을 사람들은 메주[末醬]라고 부른다 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간장 담그는 데 쓰는 물에 대해 적혀 있다. 장 담그는 물은 각별히 좋은 물을 가려야 장맛이 아름다우니 여름에 비 갓 갠 우물물을 쓰지 않는다. 좋은 물을 길어 큰 시루 독에 안치고, 간수 빠진 좋은 소금 한 말을 시루에 붓고, 물을 큰 동이로 가득히 부으면 티와 검불이 다 시루에 걸린다. 메주의 양과 독을 짐작하여 소금을 푼 후, 큰 막대로 여러 번 저은 다음 뚜껑을 덮어 수3일이 지나면, 소금이 퇴청하야 냉수 같아진 물을 쓰도록 하였다.

메주와 소금물의 양에 따라 간장의 맑기와 맛이 정해졌다. 이로 인해 왕실이나 관아는 물론이고 집집마다 간장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연원 및 용도]
간장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 조미료이기 때문에 기근이 생기면 왕실에서 백성에게 소금과 메주를 나누어 주어 간장을 담그도록 했다. 특히 간장은 구황식물의 독기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정조대에 왕이 화성행궁(華城行宮)에 행차하였을 때 수원부의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소리를 듣고, 죽을 쑬 쌀과 미역·간장을 나누어 주도록 지시한 적이 있다[『정조실록』 19년 윤2월 14일]. 이로 미루어 쌀과 미역으로 죽을 쑤고 간장을 반찬으로 삼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긴급하게 진휼을 해야 할 경우에는 간장을 직접 주기도 하였지만 이동이 쉽지 않아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왕실에서는 사옹원(司饔院)이 주도하여 간장을 직접 담갔다. 간장을 담글 때는 특별히 도기인 옹기에 담아서 숙성시켰다. 새로 간장을 담글 때는 본래 간장을 담던 옹기에 담갔으며, 맛이 익기 전에 새로 마련한 옹기로 옮겼다. 궁중에서 애용한 간장으로 절인 장절임[醬葅]으로는 황숙태(黃熟太)·가지[茄子]·무인 청근(靑根)·오이인 과자(苽子)·산삼(山蔘) 등이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장을 담근 지 21일 안에는 초상난 집과 아기 낳은 곳에 가지 말고, 낯선 잡인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규합총서(閨閤叢書)』
■ 『산림경제(山林經濟)』
■ 『시의전서(是議全書)』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음식방문(飮食方文)』

■ [집필자] 주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