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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궁중 음식을 담당한 사옹원(司饔院)에 소속되어 육류 조리를 맡아보던 천인 신분의 관속.
[개설]
별사옹(別司饔)의 별(別)은 ‘다를 별’이고 사(司)는 ‘맡을 사’이며 옹(饔)은 ‘음식 잘 익힐 옹’이다. 1417년(태종 17)에 몽고식 표현인 한파오치[漢波吾赤]가 개명되어 별사옹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파오치가 본래 육류를 가공하던 인원을 지칭하였던 것과 같이 별사옹도 사옹원에 소속되어 주로 육류 조리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담당직무]
별사옹은 사옹원에 소속되어 좌우 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근무하는 궐내의 차비인 신분이었다. 『경국대전』에는 28명으로 규정돼 있다. 문소전의 주방에 4명, 왕이 거처하는 대전의 주방에 14명, 왕비전의 주방에 6명, 세자궁의 주방에 4명으로 육류를 조리하는 일만을 전적으로 담당했다. 조선시대에 제사 음식 중 신에게 올리는 가장 귀한 술안주가 육류로 만든 찬품(饌品)이었다. 또한 궁궐뿐만 아니라 여염집에서도 가장 귀한 음식은 육류로 만든 고기 음식이어서 이것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따라서 별사옹의 업무인 육류 조리는 중요한 직임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 별사옹의 조리는 조부(調夫) 등 숙수(熟手)에게 관리 감독을 받았다.
[변천]
별사옹은 1417년(태종 17) 5월 궁궐 잡역부의 명칭을 개편할 때 한파오치를 별사옹이라 개칭하였다고 한 기록에서 처음 확인된다[『태종실록』 17년 5월 5일]. 처음에는 사옹방(司饔房)에 소속되었는데, 1467년(세조 13)에 사옹방이 사옹원으로 개편되며 소속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옹원은 1895년(고종 32)에 전선사(典膳司)로 고칠 때까지 존속되었는데, 전선사로 개편된 이후 수라간에 두었던 숙수의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됨에 따라 사옹원에 두었던 차비인 제도 역시 사라졌고, 이때 별사옹도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