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왕이나 이조·병조에서 종친 및 문무 관원에게 관품이나 관직을 수여할 때 발급해주는 증서로 성명과 제수되는 품계 및 관직명, 임명 날짜 등을 기재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의 고신식(告身式)은 태조 때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1품에서 4품까지는 관교(官敎)라는 교지(敎旨)를 내려주었고, 5품에서 9품까지는 문하부(門下府)에서 왕명에 따라 교첩(敎牒)이라는 직첩(職牒)을 주도록 하였다[『태조실록』 1년 10월 25일]. 태종은 5품 이하 관원에 대한 대간(臺諫)의 인사 심사 과정인 서경이 지체되어 관직을 받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 품계를 막론하고 모든 관원에 대한 고신을 관교로 통일하고자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관철시키지 못하였다[『태종실록』 11년 4월 14일]. 상급 관료에게는 교지 형식으로, 5품 이하 관원에게는 직첩 형식으로 발급하도록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내용]
고신은 관교·교첩·사령장·직첩 또는 직첩(職帖) 등으로 불리었다. 『경국대전』에 문무관 4품 이상 고신식·문무관 5품 이하 고신식·당상관처(堂上官妻) 고신식·3품 이하 처(妻) 고신식이 구분되어 수록되어 있다.
4품 이상 문무 관원에게 주는 고신은 교지로 발급되며 관원의 이름을 적고 부여되는 품계와 관직명, 발급 날짜를 기록하였으며 교지 따위에 찍는 왕의 금도장인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었다. 5품 이하의 문무 관원에게 수여하는 고신에는 이조나 병조에서 왕명을 받아 어느 해 어느 날에 당사자를 어느 품계 어느 관직에 임명한다는 내용을 적었으며 발급 날짜와 판서·참판·참의·정랑·좌랑의 이름을 함께 기재하였다. 인장은 이조지인(吏曹之印) 혹은 병조지인(兵曹之印)의 관인을 찍었다.
당상관 부인에게 주는 고신 역시 교지로 발급되었고 남편의 관직과 성명, 부인의 성씨와 임명되는 외명부 명칭, 날짜를 적었으며 시명지보를 찍었다. 4품 이하 관원의 처에게 주는 고신은 이조에서 발급하였고 남편의 관직과 성명, 처의 성씨와 임명되는 외명부 명칭을 적었으며, 날짜와 이조 판서·참판·참의·정랑·좌랑의 이름을 함께 기재하였다. 인장은 이조지인을 찍었다.
5품 이하 체아직(遞兒職)을 받은 군사는 종전에 받은 고신을 반납해야 했고 기한 내에 바치지 않았을 경우 고신을 회수당하였다. 고신을 잃어버린 관원은 이조나 병조에 신고하여 다시 입안을 받았다.
관원이 직무상 문책 혹은 파출되거나 형벌을 받을 경우 그 정도에 따라 관등이 격하되거나 관직에 종사하는 동안 받은 모든 고신을 빼앗기는 벌이 병행 부과되기도 하였고,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고신이 추탈되었다.
[변천]
5품 이하 관원의 고신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서경(署經)을 거쳐야 발급되었다. 특히 문반의 경우 의정부·이조·병조·사헌부·사간원·장예원·홍문관·춘추관·지제교·종부시·세자시강원의 관리, 각 도의 도사(都事)와 수령, 무반의 경우 도총부 관원과 선전관·부장들은 사조(四祖)와 해당 관원의 흠결 여부를 반드시 확인 후 서경하도록 되어있었다. 이러한 기준은 더욱 확대되어 처음 임명된 각도 도사와 수령은 품계가 4품 이상이더라도 서경을 거쳐야 했고, 해당 관원뿐 아니라 처의 4조까지 확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양사에서 서경하는 법이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