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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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算士)

서지사항
항목명산사(算士)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주사(籌士)
관련어계사(計士), 산과(算科), 산학(算學), 산학박사(算學博士), 산학청(算學廳), 호조(戶曹), 회사(會士)
분야정치
유형직역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호조의 산학청(算學廳)에 속한 종7품 관직.

[개설]
호조 산학청에 속한 종7품 체아직 관리로 종8품 계사(計士), 종9품 회사(會士)와 함께 궐 내외 각 부서의 회계 업무를 총괄하였다.

[담당 직무]
궐 내외에 있는 여러 부서의 회계 업무를 총괄하였다.

[변천]
주사(籌士)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중앙 관서의 경리일을 담당한 관리였다. 상서도성(尙書都省)·어사대(御史臺)·상서호부(尙書戶部)·상서고공(尙書考功)·상서도관(尙書都官)·예빈성(禮賓省)·중상서(中尙署)·상식국(尙食局)·장야서(掌冶署)·대악서(大樂署)·내원서(內園署)·도병마사(都兵馬使)·내장택(內庄宅)·산정도감(刪定都監)·영송도감(迎送都監)·팔관보(八關寶)에 각 1명, 상서형부(尙書刑部)·군기감(軍器監)·사재시(司宰寺)·상약국(尙藥局)·대창서(大倉署)에 각 2명, 삼사(三司)에 4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 개국 후 1392년(태조 1)에 수창궁(壽昌宮) 제거사(提擧司)에 종7품 산학박사(算學博士)를 두었고, 1466년(세조 12)에 호조에 산학(算學)을 두면서 산학박사 대신 산사(算士) 2원을 두었으며 다시 1원으로 조정되었다[『세조실록』 12년 1월 15일].

6개월마다 교체되는 체아직으로 산학에서 교육받고 산과(算科)에 합격한 산원(算員) 중에서 차례로 보임되었다. 514일 근무 후 품계가 올랐으며 종6품에 이르면 벼슬을 그만두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 있었다. 계속 일하기를 원하면 900일 근무 후 품계가 올랐으며, 정3품까지 오르면 다시 벼슬을 그만두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재정 회계를 담당한 전문직이었으나 잡직으로 분류되어 정식 문반 관료로 인정받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만기요람(萬機要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집필자] 강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