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풍수에서 땅을 볼 때 혈이 맺혔는가를 가장 먼저 보지만, 이를 둘러싼 전체 국세(局勢)의 규모나 모습, 역량 등도 매우 중시한다. 도국은 대개 주산(主山)과 그 아래 맺히는 혈, 그리고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案山]을 경계로 한다. 따라서 도국은 국세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형국(形局)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용 및 특징]
도국이란 용어는 조선초기 풍수 상소에서 잠시 언급이 되지만, 엄밀하게 풍수 용어는 아니다. 도국은 1404년(태종 4) 태종 때 한양과 무악 가운데 어느 곳이 더욱 길한지에 대한 논의에서 유한우(劉旱雨)가 한양은 길지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힐 때 규국(規局)이라는 용어로써 쓰이고 있다[『태종실록』 4년 10월 4일]. 또 세종대에는 태실을 두는 장소와 관련되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세종실록』 25년 12월 11일][『세종실록』 26년 1월 5일]. 그러한 까닭에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에 도국이란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후세인들의 주석 과정에서 도국이란 용어가 나타난다. 조선초기 왕릉 선정과 이를 보고하는 대신 및 상지관들이 의미한 도국은 혈을 중심으로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등으로 감싸는 영역을 말한다. 담장으로 둘러싼 주택, 성곽으로 둘러싼 궁궐처럼 혈을 둘러싼 담장에 비유할 수 있다. 왕릉의 경우 도국 안에 다른 일반인 무덤이나 전답 혹은 집들이 들어설 수 없다.
따라서 도국은 음택인가 양택인가에 따라 규모에 차이가 있으며, 양택이라고 하더라도 마을인가 중소도시인가 도읍지인가에 따라 규모에 차이가 있다. 도국은 혈을 둘러싼 전체적인 모습이자 외부와의 경계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땅이 왕릉으로 결정되면 그 도국 안에 있는 무덤, 집 등을 모두 철거되어야 하여 전답을 더 이상 지을 수 없게 된다. 이 점에서 도국은 왕릉의 화소(火巢)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화소는 도국보다 훨씬 좁은 개념이다. 화소란 산불을 막기 위해 도국 안의 일정 공간에 풀이나 나무를 불살라 없애는 공간을 말한다.
도국은 이러한 속성 때문에 형국론과 비슷하다. 일부 후세의 풍수 서적들은 형국론을 물형규국론(物形規局論)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형국론은 그 터와 주변 전체를 포괄하여 거시적으로 땅을 보고, 그 모습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이다.
[변천]
도국이란 용어는 조선초기 풍수 논의에서 자주 쓰였으나 이후에는 그다지 쓰이지 않고, 좀 더 구체적으로 용(龍), 혈(穴), 사(砂), 수(水)에 대해 각론(各論)적으로 간산(看山) 결과를 설명하는 경향이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