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태조산(太祖山)에서 혈처에 이르기까지 용이 뻗어가면서 한 번은 올라가서[起] 봉우리를 이루고 한 번은 내려가서[伏] 과협(過峽)을 이루는 것.
[개설]
기(起)라는 것은 산봉우리가 높이 솟아올라 뭇 산의 표시가 되며, 복(伏)이라는 것은 용맥이 땅속으로 숨어드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산이 기복을 반복하면서 봉우리와 고개를 만들어 주어야 생기가 흘러 혈을 만들 수 있다. 만약 기복이 없으면 죽은 용[死龍]이 되어 혈이 맺히지 못한다. 마치 죽은 뱀이 축 늘어져 있는 형상이다.
[내용 및 특징]
용이 태조산에서 혈처에 이르기까지 뻗어가면서 올라갔다가[起] 내려갔다[伏] 하는 것을 마치 용이 일어섰다가 엎드렸다 하는 것에 비유하여 생기가 흐르는 증거로 본다. 용이 한 번 일어나면 기가 아연 왕성해져 하나의 봉우리를 만들고 그 좌우로 지각을 뻗어내려 개장을 하여 용맥을 보호한다. 용이 한 번 엎드리면 과협이 되어 생기를 모아준다. 『명산론(明山論)』에서는 기가 모이려면 내룡(來龍)이 길고, 기복이 많아야 한다고 하였고, 기복이 없는 것을 고음(孤陰)이 되어 흉한 것으로 보았다. 『장서(葬書)』에서는 특정한 좌향인 건좌(乾坐)에서만 기복을 강조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기복이 용의 생명임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풍수서나 마찬가지이다. 기복은 용의 생사 여부를 구별 짓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데, 1430년(세종 12) 최양선(崔揚善)의 상소에 따라 헌릉(獻陵)의 고갯길 개통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예조 판서 신상(申商)은) 산의 형상은 기복이 있는 것이라야 좋은 것이라고 하였다[『세종실록』 12년 8월 21일].
기복은 태조산에서 혈처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봉우리를 일으켰다가 다시 엎드려 고개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때문에 박환(剝換)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기복을 함에 있어서 큰 산이 작은 산으로 바뀌고, 높은 산이 낮은 산으로 바뀌고, 강한 산이 부드러운 산으로 바뀌고, 바위산이 흙산으로 바뀌는 것을 박환이라고 한다. 만약 용이 기복이라는 변화를 하더라도 그 출발할 때의 용의 높이나 굵기를 그대로 간직하여 혈처까지 뻗어간다면 그 어느 곳에도 도읍지나 마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박환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한 것이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 가운데서는 『감룡경(撼龍經)』과 『의룡경(疑龍經)』이다. 박환이야말로 바야흐로 맥의 기운이 진짜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박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참되지 못하다고 할 정도였다. 따라서 기복과 박환은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