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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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殿直)

서지사항
항목명전직(殿直)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전지기
관련어경기전(慶基殿), 궁위령(宮闈令), 문소전(文昭殿), 소격전(昭格殿), 영숭전(永崇殿), 인안전(仁安殿), 준원전(濬源殿), 집경전(集慶殿)
분야정치
유형직역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각종 사당이나 혼전(魂殿)·진전(眞殿)에 배치된 이속(吏屬).

[개설]
전직(殿直)은 전지기라고도 한다. 전직은 1396년(태조 5) 신덕왕후의 혼전인 인안전(仁安殿)에 처음 설치된 이후 각종 혼전이나 진전 및 사당 등에 배치되었다. 전직은 제향 때 올리는 찬수(饌需)나 사당 등의 청소 등을 수행하였다.

[담당 직무]
전직은 각 전의 청소를 비롯해 진상하는 찬수를 감독하였고[『세종실록』 4년 8월 24일], 소장하고 있는 악기의 관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5년 5월 1일]. 제향 때에는 신주의 출납을 담당하는 궁위령(宮闈令)의 역할을 담당하였다[『세종실록』 3년 11월 7일].

한편 1457년(세조 3) 9월에는 전직의 자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에는 전직에 임명된 자들이 문자 해독 능력이 없거나 가난하고 정결하지 못하여 분향하고 청소하는 직임에 적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축문도 읽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이에 관찰사로 하여금 지역 사람으로 토관(土官)이나 지인(知印), 생도(生徒) 중에서 문자를 해독하고 임무를 감당할 만한 자를 가려 천망하도록 하였다[『세조실록』 3년 9월 14일].

전직의 전최(殿最)는 이미 이전에 관련 법규가 제정된 바 있는데, 지방에 소재한 전의 전직은 관찰사가 그 성적을 심사해서 우열을 정해 보고하였다[『세종실록』 24년 6월 22일].

[변천]
전직을 처음으로 설치한 것은 1396년 12월로,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혼전인 인안전에 전직 2명을 두었다[『태조실록』 5년 12월 21일]. 이후에 소격전(昭格殿)을 비롯해 1418년(태종 18)에는 준원전(濬源殿)에 2명을 두었으며[『태종실록』 15년 10월 16일], [『태종실록』 18년 3월 3일], 문소전(文昭殿)이나 광효전(廣孝殿) 등에도 전직을 두었다. 이 밖에도 평양의 기자(箕子) 사당,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두었다. 1442년(세종 24)에는 태조의 어진(御眞)이 봉안된 곳의 명칭을 전주는 경기전(慶基殿),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이라 하고 각각 전직 2명씩을 설치하였다[『세종실록』 24년 6월 22일]. 1446년에는 휘덕전(輝德殿)에, 1450년(문종 즉위) 7월에는 경희전(景禧殿) 등에도 전직이 설치되었다. 조선후기까지도 문소전이나 경기전 등 각 전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이후에도 계속 존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이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