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왕세자의 서녀에게 주는 정3품의 작위로, 조선초기 세종 때에는 군주(郡主)와 함께 종실의 딸로 지칭되었다가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 ‘외명부’조에 정2품 군주와 구분되어 법제화되었다. 이 규정은 이후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등에도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담당 직무]
현주(縣主)는 차기 왕인 왕세자의 딸로서 존귀한 지위에 있었으므로, 직무보다는 국가로부터 많은 은전을 받았다. 현주에게 장가든 자에게는 처음에 종3품의 첨위(僉尉)를 주었다가 후에 정3품의 첨위로 올려주었다. 현주의 부친인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군주는 공주로, 현주는 옹주(翁主)로 승격된다. 이로써 외명부 가운데에 품계를 초월한 지위를 가졌으며 그에 준한 대우를 받았다. 남편도 옹주의 부마(駙馬)로 승격, 종2품에 봉작되었다.
[변천]
현주는 왕세자의 서녀에게 내린 외명부 정3품 위호로, 1431년(세종 13) 군주와 함께 종실의 딸이라 하였으며, 이들 사이에 차등의 분별을 두지 않았다[『세종실록』 13년 10월 17일]. 이어 1440년(세종 22)에는 한(漢)나라가 황녀(皇女)를, 당(唐)나라가 친왕(親王)의 딸을 현주라고 부르던 중국 제도를 상고하여 왕의 서녀와 왕세자의 적실녀(嫡室女)를 군주, 왕세자의 서녀와 대군의 적실녀를 현주라 정하였다[『세종실록』 22년 4월 15일].
성종대에 적(嫡)·서(庶)를 구분하기 위하여 세자빈이 낳은 딸은 군주, 후궁이 낳은 딸은 현주로 구별하였다. 군주는 정2품, 현주는 정3품의 작위를 받도록 규정하였고, 이를 『경국대전』에 법제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