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팔일무(八佾舞)의 ‘일(佾)’은 춤의 열(列)을 의미하며 열을 지어 추는 춤이라는 의미에서 일무라 한다. 팔일이란 춤추는 열이 8열이 되므로 총 64인이 줄지어 서서 추는 춤을 말한다. 춤의 열수는 신분에 따라 구분되는데 천자(天子)는 팔일무, 제후(諸侯)는 육일무(六佾舞), 대부(大夫)는 사일무(四佾舞), 사(士)는 이일무(二佾舞)를 쓴다.
[연원 및 변천]
일무의 열수를 신분에 따라 다르게 구분한 것은, 예(禮)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위와 아래의 질서를 세우는 ‘예자위이(禮者爲異)’가 춤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신분이 높을수록 열수를 많게 한 것은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예’의 법칙을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조선 세종 연간에는 일무가 회례 악무로 제정되기도 하였으나, 일정 기간 연행되다가 더 이상 전승되지 않았다. 오늘날 일무는 제례에서만 연행되고 있다.
[절차 및 내용]
팔일무는 천자를 위한 제향(祭享)에 쓰이는 것이므로 조선시대에는 쓰이지 않았다. 이는 조선이 제후국(諸侯國)임을 자처했기 때문으로 조선에서는 제후의 위격에 맞는 육일무를 연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팔일무를 연행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광무 1)에 고종이 황제를 선언한 이후의 일이며 현재 연행되고 있는 종묘제례, 문묘 제례, 사직 제례 등에서도 팔일무를 연행한다.
종묘 제향을 올릴 때 연행되는 팔일무는 일수와 열수가 8일이므로 총 64명의 무원이 춘다. 제향에서 추는 일무는 문덕을 칭송하는 내용의 문무(文舞)와 무공을 기리는 내용의 무무(武舞)로 나뉘는데, 문무를 추는 제향의 절차는 영신(迎神)·전폐(奠幣)·초헌(初獻)례이며, 무무를 추는 절차는 아헌(亞獻)과 종헌(終獻)례이다.
문무와 무무를 출 때에는 손에 드는 의물(儀物)이 각각 다른데 종묘제례의 문무는 왼손에 약(籥), 오른손에 적(翟), 무무는 앞의 4줄은 목검(木劒), 뒤의 4줄은 목창(木槍)을 들고 춘다. 문묘 제례의 문무는 종묘제례 문무와 같이 약과 적을 들고 추지만 무무는 64명이 모두 왼손에 간(干), 오른손에 척(戚)을 들고 일무를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