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헌현(軒懸)의 ‘헌’은 제후(諸侯)를 위한 악대의 의미이고, ‘현’은 악기를 매단다는 의미로서 신분에 따른 악기 편성법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편성의 기준이 되는 악기는 종과 경을 엮어 매달아놓고 연주하는 편종(編鐘)과 편경(編磬), 특정한 한 음만을 매달아놓고 연주하는 특종(特鐘)과 특경(特磬)이다. 헌현은 이들 악기를 남쪽을 제외한 동쪽, 서쪽, 북쪽의 3면에 배치하는데, 각 방위에 편종과 편경 각 세 틀씩 아홉 틀을 편성한다. 특종과 특경은 12지 중 남쪽에 해당하는 사(巳), 오(午), 미(未)의 세 방위를 제외하고 각 아홉 틀을 편성한다.
[연원 및 변천]
신분에 따른 악기 편성을 구분할 때 기준이 되는 편종과 편경은 이 울리는 악기, 즉 체명악기(體鳴樂器)에 속하므로 종이나 경을 나무로 된 틀에 매달아놓고 연주했기 때문에 악대 명칭에 매달 현(懸) 자를 쓴다. 헌현이 제후를 위한 악대로 남쪽을 제외한 삼면에 편종과 편경을 편성하는 것에 비해 천자(天子)를 위한 악대는 궁현(宮懸)이라 하여 동, 서, 남, 북의 4면에 배치하며 대부(大夫)를 위한 악대는 판현(判懸)이라 하여 동, 서 2면에, 사(士)를 위한 악대는 특현(特懸)이라 하여 동쪽 1면에만 편성한다. 궁현이 4면에 종과 경을 배치하는 것은 4면에 담장이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며, 헌현이 남쪽을 비워 3면에 종경을 배치하는 것은 왕이 남면(南面)하기 때문이다. 판현이 동서 2면에만 종경을 배치하는 것은 대부가 왕의 좌우에서 돕는 것을 의미하며 특현에서 종경이 동쪽 1면에만 배치되는 것은 사(士)가 특립독행(特立獨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같은 헌현 악대의 원칙적 편성은 조선조 전 시기에 그대로 지켜졌던 것은 아니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종과 경, 편종 편경이 수효대로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저간의 사정을 알려주는 것이다[『세종실록』 15년 11월 27일].
[절차 및 내용]
헌현의 원래 의미는 종과 경의 편성을 기준으로 하여 사용되었지만 조선시대에는 당하 혹은 전정(殿庭), 묘정(廟廷)에 편성되는 악대를 두루 헌현이라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헌가(軒架)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경우 당상(堂上) 혹은 상월대에 편성되는 등가(登歌) 악대와 대칭되는 의미가 되며 등가가 하늘을 상징하는 악대임에 비해 헌가는 땅을 상징하는 악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헌현은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등 오례(五禮) 전반에 걸쳐 쓰인다. 헌현이 편성되는 의례로는 종묘, 사직 등의 길례, 조하(朝賀), 조참(朝參), 양로연, 왕비책봉, 왕세자책봉, 문무과 방방(放榜), 교서반강(敎書頒降), 영조칙(迎詔勅), 배표의(拜表儀)의 등 각종 가례, 수린국서폐(受隣國書幣)의 등 빈례, 사우사단(射于射壇)의, 친사의(親射儀) 등 군례, 사위(嗣位), 영사시제급조부의(迎賜諡祭及弔賻儀) 등 흉례 등이 있다. 사위 및 영사시제급조부의 등의 흉례에 편성되는 헌현은 진설만 해놓고 연주는 하지 않는 진이부작(陳而不作)의 방식이다. 헌현 악대는 제후국임을 인정한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지만 1897년(광무 1) 조선이 황제국임을 선포한 이후에는 천자의 악대 편성인 궁현의 제도를 채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