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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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

서지사항
항목명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석전(釋奠)
관련어문묘(文廟), 성균관(成均館)
분야왕실
유형의식 행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유사(有司)들이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에게 제사하는 석전(釋奠)을 주관하여 거행하는 의례.

[개설]
매년 음력 2월인 중춘(仲春)과 8월인 중추(仲秋)의 상정일(上丁日)에 담당 관원인 유사가 성균관(成均館)의 문묘에 나아가 공자에게 제사하는 의식으로, 국가 사전 체계에서 중사(中祀)로 분류되었다. 상정일은 날짜의 간지에 정(丁)이 들어가는 첫 번째 날이다. 제사를 주관하는 유사는, 『세종실록』 「오례」에서는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은 정2품,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亞獻官)은 정3품, 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관(終獻官)은 종3품으로 규정하였다가, 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초헌관은 정2품, 아헌관은 정3품 당상, 종헌관은 정3품으로 변경되었다.

[연원 및 변천]
유사가 주관하는 석전은 고려 때부터 시행되던, 정기적인 석전 의식이었다. 조선에서는 1414년(태종 14) 7월에 유사가 주관하여 거행하는 석전 의식이 처음으로 제정되어 반포·시행되었다[『태종실록』 14년 7월 11일]. 이후 제도적인 정비 과정을 거쳐 『세종실록』 「오례」에 ‘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이 의식은 『국조오례의』에도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선포 이후 편찬된 『대한예전(大韓禮典)』에서는 ‘유사석전문묘의(有司釋奠文廟儀)’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세부적인 절차는 기존의 국가 전례서에 수록된 내용과 동일하다.

[절차 및 내용]
유사가 주관하는 석전의 절차는 왕세자가 주관하는 석전의 절차와 거의 동일하며, 다만 왕이 석전에서 사용할 향(香)과 축(祝)을 초헌관에게 전달하는 ‘전향축(傳香祝)’이 들어가는 대신 왕세자가 궁을 나서는 출궁(出宮) 절차가 빠진 것이 다르다.

석전 준비는 5일 전에 제관(祭官)들이 재계(齋戒)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재계는 산재(散齋) 3일과 치재(致齋) 2일을 시행하였다. 산재는 제관이 치제에 앞서 몸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 일상 업무는 정상적으로 수행했으며 평소의 자기 집의 침소에서 잤다. 치재는 산재 이후 제사가 끝날 때까지 재계하는 것으로, 치제 기간에는 전적으로 제사에 관련된 일에만 전념하였다.

석전 2일 전에는 문묘의 안팎을 청소하고 제수 음식을 점검하는 곳인 찬만(饌幔)을 설치하였다. 석전 1일 전에는 석전에서 음악을 연주할 악기들을 배치하고 헌관(獻官)과 제관들의 위(位)를 설치했으며, 석전에서 사용할 희생(犧牲)을 점검하였다. 또 이날 궐에서는 왕이 초헌관에게 석전에서 사용할 향과 축을 전하는 전향축 의식을 거행하였다.

석전 당일에는 전사관(典祀官)과 묘사(廟司)가 제례에 사용할 그릇인 찬구(饌具)를 진설하고, 제관들과 여타 관원 및 학생들은 정해진 복식을 갖춘 다음 각자 정해진 자리로 나갔다. 이어 아헌관과 종헌관 등이 자리에 선다.

석전 의식은 먼저 사배례(四拜禮)를 한 다음 향과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를 실시하였다. 초헌관 먼저 문선왕(文宣王)인 공자의 신위에 나가 향과 폐백을 올렸으며, 이어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인 안자(顔子)→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인 증자(曾子)→기국술선공(沂國述聖公)인 자사(子思)→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인 맹자(孟子)의 순서로 4성(四聖)에게 향과 축을 올렸다.

전폐가 끝나면 각 신위에 술을 올리는 작헌(酌獻)을 하는데, 초헌·아헌·종헌 등 세 번 실시하였다. 술잔을 올리는 순서는 전폐와 동일하게 먼저 공자에게 올린 다음 안자→증자→자사→맹자의 순으로 진행했으며, 아헌·종헌도 초헌과 같은 방식으로 시행하였다. 왕세자 주관의 석전과 마찬가지로 유사 주관의 석전에서도 헌관들이 공자와 4성 모두에게 직접 술을 올렸다.

작헌이 끝난 다음에는 초헌관이 복주(福酒)를 마시는 음복(飮福), 제관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는 수조(受胙)를 실시하였다. 다음으로 제기를 거두어들이는 철변두(撤籩豆)를 하는데, 제기를 모두 거두는 것이 아니라 변(籩)과 두(豆) 하나씩만 위치를 약간 옮겨 놓았다. 제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배를 함으로써 석전 의식을 마쳤다. 의식이 끝나면 헌관과 제관들은 석전에서 사용한 폐백을 묻는 것을 관람하는 망예(望瘞)를 실시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대한예전(大韓禮典)』
■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석전대제』,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 [집필자] 강문식